이과 대학원생이 연구실을 고르는 법
대학원생은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따라서 어떤 연구실에서 지내는지에 대한 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대학원생이 연구 및 실험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랩미팅, 학회 발표는 물론이고 자잘한 인간관계부터 조교, 행정일 등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들을 잘 해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전공분야 및 경영, 회계, 예술 등 못하는 것이 없어야 하는 느낌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받으며 버티는 시간들의 축적일 것이다.
호기심에 이끌렸든, 취업을 위해서든 ‘연구실을 잘 고르는 것’ 도 갖춰야 할 능력 중 하나임을 깨달은 시점에 몇 가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
1. 교수님 원탑으로 운영되는 랩
제안서, 실험 아이디어, 행정 등 대부분의 것이 교수님의 손을 거쳐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아마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거나 본인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신 편일 것이다. 이러한 랩의 장단점은 극명하다.
우선 장점은 교수님의 아이디어를 큰 틀에서 같이 실현해갈 수 있다. 연차 혹은 경험이 많으신 교수라면 금상첨화. 학생들이 연구적으로 방향감을 잘 잡고 나아갈 길을 터주신다. 능력이 좋으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구비가 넉넉하여 풍족한 실험실 생활을 할 수 있다.
단점 또한 분명한데, 먼저 자신의 아이디어는 묵인될 가능성이 있다. 웬만큼 기발한 아이디어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랩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거절당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내’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탓에 흥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서 티키타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랩실에서 박사학위를 하면서 느낀 점 공유*
- 상대적으로 ‘잡일’을 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실험에 집중할 수 있다. ‘실험에 집중함’ 은 많이 실패와 트러블슈팅을 겪으며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연구자에게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 된다. (물론 잡일이 많은 랩실도 가능하다. 밤을 지새워야 할 뿐,,,)
- 연구지도가 빠르게 진행된다. 교수의 아이디어, 곧 관심사라는 뜻으로 피드백이 빠르게 오갈 수 있다. 서로가 열정(?)을 갖고 연구할 수 있다.
- 내 아이디어와 밤낮으로 진행했던 실험 데이터들이 쓰레기통으로 구겨질 때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무한하다. 이 또한 잡일로 인한 시간소비가 적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교수의 관심사와 니즈가 나와 같다면 찰떡일 연구실이다.
하지만, 위 조건들을 다 갖춘 랩 교수가 ‘마이크로매니징’을 하신다면 도망쳐라. (확률 매우 높음..)
2. 포닥 혹은 박사 원탑으로 운영되는 랩
랩실에는 교수 다음으로 박사 후 연구원(포닥_Post-Doc), 박사생들이 있기 마련이다. 포닥들이 여러 명 있는 경우, 박사, 석사생들은 포닥별로 한 팀을 이루어 실험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포닥분들은 박사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됐기에 실무에도 강한 편이다. 실질적으로 실험을 배우며 이론적인 면에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이 분명하다. 보통 포닥들의 과제 혹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는데, 분위기에 따라 자신의 아이디어가 반영될 확률이 그나마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팀을 이루어 연구를 하다 보면 팀원들의 장점들을 배울 수 있고, 자연스레 팀워크의 중요성도 깨닫게 된다. ‘연구력’ 이 길러지는 시점에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끌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교수는 전체적인 연구방향을 이끌고 계시겠죠,,,?ㅎ
3. 신생랩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교수의 랩실을 일컫는다. 초기 멤버들이 실험 장비 세팅 및 제안서 따기 등으로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랩 운영의 모든 것을 처음 확립해 가는 창단 멤버들이기에 열정이 남다르다. 내 친구의 경우에도 수소문을 통해 키트 및 장비를 세팅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힘들었지만 뿌듯했던 경험이었다고 한다. 만약 실험실 운영의 모든 것을 경험해 보고 싶은 경우에는 추천하나 감수해야 할 것도 분명히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 랩실 특성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자, 그럼 이제 랩실을 어떻게 선택해야 되는가.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해보려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참고만 부탁드립니다.
1. 연구비
연구실 선택 기준들 중 중요한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도 사람이기에 월급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실험과 연구를 해보기 위해 대학원을 오지 않았나. 실험재료 사게 해 달라…!
아무래도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4-50대 정도 교수가 유리할 것이다. 경험과 실력이 받쳐주는 시점에 연구 프로젝트도 많이 딸 것이고, 그에 따른 보상들도 주어지기 마련이다. 정말로 악덕한 교수가 아니라면 좋은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대학원생들에게도 당연한 리워드를 주어야 한다.
어딜 가나 ‘돈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MZ세대인 우리는 인건비에 있어서 가스라이티드(Gaslighted) 되지 말 길.
2. 포닥/ 박사생들의 비율
교수들은 본인 제자들이 학계에 계속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이 클 것이다. 이를 위해 학생을 잘 지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물론 석사 졸업생들만 많은 랩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박사생, 포닥들이 많다는 것은 원활하게 연구할 수 있는 랩실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3. 교수의 평판
대학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김박사넷’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익명의 대학원생이 만든 사이트라고 들었다. 세상에는 유능하고 이타적인 대학원생들이 참 많다. 대학원을 고르기 전, 관심 있는 랩실에서 인턴 활동을 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에 참고할만한 좋은 사이트다. 이게 그렇게 중요할까? 당연하다. 주변에 지도교수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시도를 한 경우도 봤다. 특히 박사를 원하는 학생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8-9년까지 함께 하기도 한다. 즉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영향력을 지대하게 끼친다는 것이다.
내 청춘을 희생해서 보내는 시간인만큼,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가고자 하는 랩실 지도교수의 성향을 파악하여야 한다.
모두 슬기로운 대학원생활 하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