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친 자' (P213, 내 심장을 쏴라中에서, 정유정)
아주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하지만 저 문장은 또렷하게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갇힌 자와 미친 자의 어순이 다를 뿐 뜻은 천지차이다. 행위와 결과의 귀책사유가 본인과 타인의 차이랄까? 후자의 뉘앙스는 매우 억울하게 느껴지고 전자가 풍기는 의미는 자업자득이랄까? 그렇지만 모두 한 끗 차이다. 문제는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갇힌다는 점이다. 여기서부터 본질을 깨닫고 문제해결실마리를 찾아들어가야 한다. 스스로 갇힌 자는 탈피해야 하고 남에게 갇힌 자는 탈출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스스로를 틀에 가두는 것은 어쩌면 조그마한 징크스나 사소한 습관에서 시작된다. 행동의 반경이 좁아지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좀 더 불투명한 의식을 스스로 미신적인 행동에 위안받으려 하는 이 조그마한 시작이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스스로 가둔 자 스스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갇힌 공간의 안락함이 더 우세한 것인지 갇힌 공간의 위협이 더 열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서서히 자신을 물들이며 착각한 평온을 합리화한다.
이제는 탈피가 필요하다. 즉 탈피의 사전적 뜻은 자동사이며 낡은 습관이나 사고방식 따위를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다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이 장소나 구속에서 빠져나오거나 벗어나는 것을 탈출이라 한다. 같은 자동사이지만 탈피는 능동적이고 탈출은 수동적이 함유된 능동형이다. 탈출은 강인함이 탈피는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미쳐서 갇힌 자는 탈피해야 하고 갇혀서 미친 자는 탈출해야 한다. 본질은 스스로를 능동적으로 가둔다는 것은 아주 사소하고 미세한 행동습관이 큰 틀을 형성하고 여기에 조그마한 수동적 가둠이 전체를 구성한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는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가뒀을까가 아니고 왜 풀어줬을까! 란 말이야'(영화 올드보이 이우진 대사中에서)
우선 스스로 탈피해야 한다. 스스로 틀속에서 헤매지 말고 탈피하고 정면돌파를 하던 탈출을 하던 간에는 그 차후의 문제이다. 이것이 이번 가을여행의 깨달음이다. 본질은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친 자'가 아닌 '미치도록 스스로를 가두고 싶은 자와 미치도록 스스로를 가둔 자를 풀어주고 싶은 자'이다. 해방시키기 위해서 다시 가두어야 한다. 그래야 깨닫고 스스로 그 틀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느 고승이 말한 '마음밖에 진리가 없다는 선지식'은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비로소 그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는힘은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
더 엠브로시아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온통 산으로 빽빽이둘러싸여 갇힌환경 같지만오히려 활짝 열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은 쉼의 덕분이다. 그러나 이 쉼이 끝나면 일상의 생활은 몸을 움직여야 한다.움직이고 무엇인가 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뜬금없는 화두 같은 이 엉터리 같은 현실이 참 생소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의 상태가 쉼이라고 착각한 무지를 뉘우치며 이번 쉼 기간 동안 스스로 사소한 생활습관 그리고 마음가짐등 아주 작은 것부터 스스로를 교정시키고 해방시키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련다.
이번 가을여행은 충북 단양, 강원도 고성, 그리고 반가운 얼굴을 뒤로하고 강원도 동해를 거쳐 경북 울진의 경계를 넘나들며 쉼과 움직임이 동시에 반복되었다.계획은 오늘까지이지만 내일은 내일의 일정을 만들어가면 계획과 동시에 실행이 수행될 것이다. 조바심 없이 느긋하게 쉬엄쉬엄 이 가을을 보내련다. 내일은 산으로 갈지 평지로 갈지 강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내일 결정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이 아닌 무엇인가 바쁜 쉼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