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산성툴 필요할까?
정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리 활동 그 자체는 정리의 대상이 아닐까?
우리는 CEO에 가까워지고 비서에서 멀어져야 한다. CEO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을 비서를 고용해 처리토록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는 비용이 비서 고용비보다 크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은 유지된다. 그러니까 시간 대비 생산성이 높은 일을 하는 것은 비서가 아니라 CEO이다. 하지만 수많은 생산성 서비스는 비서처럼 일정과 할 일을 관리하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혹시 할 일이 많아 Todo list로 정리하고 캘린더에 적어둘 일정이 많아 App store에서 예쁜 캘린더 앱을 또 하나 구매했다면, 잠깐만 시간을 두고 다음 질문을 고민해보자.
그 많은 일정과 할 일이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가?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좋은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까?
툴이 있어서 할 일이 많아진 건 아닌가
비서가 되고 싶은가? CEO가 되고 싶은가?
그래서 이제 그만 불필요한 생산성 툴을 자제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사용 중인 생산성툴을 아래 2가지 관점에서 재점검해보자.
1. 많은 기능과 미려한 인터페이스, 친절한 고객 지원 때문에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 회사에 투자하려면 그런 정보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용자를 현혹하는 기능과 필요한 기능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부가적인 기능은 보통 혼란을 주고 시간을 더 소비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2. 생산성 툴을 사용하는 데 하루 얼마의 시간이 드는가?
일정과 할 일을 정리하는 데 하루 30분 이상 사용한다면 문제가 있다. 더 나아가 주말이나 휴일에 몰아서 정리를 해야 할 정도로 정리할 것이 많다면 정작 행동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툴 사용 시간을 제한하겠다고 다짐해도 소용없다. 제한된 시간 안에 툴의 기능을 100% 활용하느라 손만 바빠질 뿐이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시간 안에 가능한 방법을 고민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마치 아무런 대책 없이 아침 출근 준비 시간을 30분에서 20분으로 줄여보겠다고 노력하는 것과 다름없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존 방식대로 빠짐없이 수행하면서 시간을 줄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불필요한 툴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명확한 해결책이다.
그럼 내 사용 경험을 토대로 대표적인 생산성 Tool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1) Todoist
가장 좋아했던 할 일 관리 앱이다. Mac과 Windows를 넘나들며 많은 할 일 관리 툴을 사용했으나 결국 여기 안착해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던 Task manager였다. UI가 미려했고 라벨 기능과 메모 추가 기능이 마음에 들었다. 템플릿을 적용하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생성할 때마다 쉽게 할 일을 세트로 등록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기능이 많다. 내용을 분석하여 자동으로 날짜를 등록해주는 기능은 좋았지만 금세 여러 버그에 골치가 아팠다. 라벨 기능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았다. 할 일 메모 기능은 웬만하면 기억력으로 커버 가능했다.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정렬할 수 있었는데 이걸 설정하는 것도 고민이 된다. 3단계로 나눠져 있지만 다른 일보다 중요하다는 걸 상대적으로 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대로 우선순위를 매기려면 모든 할 일을 쭉 훑어보고 3분류로 나누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하나의 항목만 보고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만만치 않다. 그리고 우선순위는 꼭 필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중요한 일은 매일매일 바뀌거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행 전에 간단히 자문만 해도 알 수 있다. 보통 하기 싫고 오래 걸리는 일이 우선순위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겠다고 적어 놓은 일이니까.
2) Trello
디자인과 인터페이스가 너무 좋다. 디지털 칸반 보드를 모토로 만들었고 실시간으로 변경 사항이 반영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이렇게 리스트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리스트 간 Task 이동이 손쉽다는 것이 큰 장점은 아니다.
Trello의 기본 리스트는 Todo, Doing, Done인데 여기서도 두 가지 의문이 든다. Doing이라는 리스트를 왜 만들어야 할까? 나는 그것이 진행 중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아는 데 마치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처럼 정리해야 할까? 그리고 할 일이 끝났으면 지우면 되지 Done 리스트는 또 무엇인가? 해결된 것을 왜 남겨두는가? 언제 해결됐는지 무엇을 해결했는지 저장할 필요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이 두 가지 리스트가 필요 없다면 Trello로 할 일과 일정을 정리하는 건 낭비다. 회사 내 6개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3명이 함께 사용해봤는데 그때는 참 유용했다. 이 땐 Trello로 익숙하지 않은 팀원과 사용해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익숙한 사람과 함께 써야 효과가 좋고 병렬적으로 난잡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다루는 데 적합했다. 하지만 혼자 쓰기에는 버겁고 과한 기능들로 가득했다.
3) Evernote
2009년 3월부터 메모 용도로 사용했다. 메모가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집 앞 부동산 팸플릿에도 적혀 있을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메모가 너무 많으면 생각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메모를 제대로 활용 못 하는 것은 제때 정리하지 못한 자신의 게으름을 탓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리 아니라 쓸모없는 메모를 보관하지 않는 것이다. 방이 깨끗한 사람은 청소를 잘하는 사람 아니라 어지럽히지 않는 사람이다.
많은 메모를 적고 관리할 수 있도록 기능이 잘 되어 있었지만 목적은 분명하지 않은 메모가 쌓이면서 골치 아팠다. 퍼블리싱이 목적이라면 콘텐츠마다 노트로 나뉘어서 큰 그림을 그리기 힘들다. 이를 위해 Tag와 폴더 기능이 있었지만 굉장히 손이 많이 간다. 수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불편하니 적당히 나누는 균형감이 필요했다.
정리는 힘들고 쓰는 건 좋았기 때문에 정리하는 속도보다 노트가 쌓이는 속도가 빨랐다. 자연스럽게 에버노트는 점점 쓸모없는 메모 더미로 변해갔다. 지금은 노트를 보다 보면 내가 왜 이걸 적었을까? 싶은 것들이 많다. 아마도 메모를 통해 그 어떤 가치를 만들려 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쉽게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것 같다. 아이디어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툴의 사용을 줄이고 이 두 가지를 시도해보기 바란다.
1. In-box를 없애라.
In-box는 분류가 필요한 일거리를 하나의 공간에 모아두는 공간이다. 이것을 사용하면 정리의 시작점이 In-box이 된다. 이 방식은 두 가지를 전제한다. 정리는 몰아서 하는 것이 좋다는 것과 하나도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리를 몰아서 하는 것보다 정리할 대상을 효율적으로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세세한 분류가 정말 중요한 작업인지 생각해보자. Inbox는 잘못 사용하면 확실히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2. 필요한 계획만 세워라.
계획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Todo list와 Calendar가 빽빽한 것을 좋아한다. 나 역시 그랬는데 일이 많아서라기보다 적고 나면 퍼즐을 다 맞춘 것처럼 뿌듯했기 때문이었다.
계획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이 이끄는 사업의 청사진이나 꿈의 방향을 그리는 대단한 계획과 그냥 머릿속에 기억해도 좋을 중요치 않은 일을 계획하는 소소한 계획이 그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대단한 계획에 시간을 투자하고 소소한 계획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불행히도 소소한 계획은 빠르고 작은 성취감이 있어 무시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시도해볼 만한 좋은 방법은 캘린더와 Todo list를 사용하지 않고 한 달을 보내 보는 것이다. 의외로 작은 일에는 기록이 필요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특히 지난 이벤트를 캘린더에 기록하거나 이미 끝낸 일을 Todo list에 기입하고 Done 표시를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마무리
성공이 생산성 관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그보다 하나의 Task에 몰입하여 성과를 낸 경우가 많다. 시간 관리를 잘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에 그들의 생산성 기법이 유명해진 것뿐이다. 진짜 해야 할 일에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 생산성 툴 남용은 과감히 버리자.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생산성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