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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토니 Mar 11. 2020

재택근무는 정말 꿈일까?

리모트 / 제이슨 프리드, 데이빗 하이네마이어 한슨

월 1~2회 재택근무를 한지는 2년, 완전 원격근무를 시작 한지는 2달 정도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부럽다고 합니다. 출근하지 않고 집 안방에서 일하는 삶. 원할 때 일을 시작하고 마치는 삶. 사무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삶.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주요 포인트입니다.


경험해보니 원격근무는 분명히 장점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주변인들의 말처럼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업무와 생활의 분리라든지 스스로 성과를 유지하는 노하우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확실한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실험하고 평가하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 함께 일하는 동료분께 <리모트>라는 책을 추천받았습니다. 베이스캠프(basecamp.com)의 CEO인 제이슨 프리드와 루비 온 레일즈의 아버지 데이빗 하이네마이어 한슨(a.k.a DHH)이 자신들의 원격근무 경험을 토대로 만든 책입니다. 각자 시카고와 코펜하겐에 살면서 함께 회사를 창업한 두 사람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원격근무를 기본으로 한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노하우라면 충분히 쌓였겠죠 :)


읽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실제 독서 시간은 2시간 남짓일 정도로 가벼운 책입니다. 삽화가 많이 있고 내용도 잘 읽힙니다. 특히 역자인 임정민 님의 번역은 탁월했습니다. 번역 때문에 다 읽고 나서 원서를 다시 찾게 되는 외서가 적지 않은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읽으실 분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한글판을 권하겠습니다.


저자들은 원격근무에 호의적입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원격근무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가들이니 당연하겠지요. 그렇지만 원격근무를 무조건 신봉하진 않습니다. 원격근무의 한계나 타협점도 잘 얘기해줍니다.


가끔 있는 밤 11시나 새벽 5시 전화는 원격근무로부터 얻는 자유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자.
한두 사람의 직원이 모든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작은 회사의 경우에는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해당 직원에게만 '정상 업무시간'을 적용하고, 다른 직원들까지 구속할 필요는 없다. 잘못된 평등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격근무가 모든 질문의 답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반문은 "고객 대응은 누가 해?" 혹은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지!"와 같은 것입니다. <리모트>는 이런 부분까지 원격근무로 돌리자는 주장을 펼치진 않습니다. 또, 시간대(timezone)가 다른 곳에 있는 동료와 함께 일하느라 발생하는 엉뚱한 시간의 회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타협해야 하는 점이 있고, 원격근무에 적합한 직무도 잘 고려해서 선정해야 합니다.


같이 일하는 중첩된 시간이 없는 원거리 협업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원격 근무의 가장 큰 특징은 비동기적인 협업입니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동료에게 요청을 전달하는 것이 같을 순 없지요.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데 30초 내에 답이 오길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하루 한 번씩 메일이 오고 가는 외주업체 협업처럼 운영되어서도 안 됩니다. 적절한 타협점은 하루 4시간 정도의 중첩된 업무시간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일은 그 시간 내에 처리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집중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언어 장벽에 대해 신경 써야 한다.
원격 근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쓰기 실력이 요구되며, 사내 공식 언어로 명확한 지시 전달 체계가 중요하다.


채용할 때 요구하는 능력 역시, 원격근무를 위해서는 달라야 합니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어렵고 비동기적인 상황에서도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려면 무엇보다 글쓰기가 중요합니다. 글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이런 능력을 잘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원격근무를 함께 하긴 어렵습니다.


게으름보다 과다하게 업무를 하는 것을 경계하라.
"오늘 아내가 친구들과 저녁 먹고 들어온다고 했으니 나 혼자 조용히 일할 수 있겠군."
"토요일에 비가 온다고? 화요일 컨퍼런스콜의 준비 보고서나 마쳐야겠군."
이렇게 일만 하는 직원은 곧 지쳐버린다.


저 역시 원격근무를 시작한 뒤로 가장 적응하기 힘든 부분은 업무와 생활의 명확한 구분이었습니다. 반도체 회사를 다닐 때엔 사업장 바깥에서 회사 자원에 접근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일이고, 작은 스타트업에 출근할 땐 쉬고 싶어도 늘 터지는 사고 때문에 쏟아지는 이슈에 대응하느라 사무실을 떠난 후에는 의도적으로 개인 생활로 돌아가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원격근무를 하고 나니 집이 곧 사무실이라 도망갈 곳이 사라졌습니다. 손만 뻗으면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자세는 분명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원격근무를 채택한 회사는 직원이 일을 하는지 감시하기보다 직원이 제 때 쉬고 있는지 관심 가지는 게 더 현명합니다.


회사에서 소외되지 않는 두 가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있다. 하나는 소란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을 잘하는 것이다. 원격 근무자라면 일을 잘하는 것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원격근무자는 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사무실에 있는 사람이라고 다르겠습니까마는 원격근무자는 대면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업무 성과와 근무자가 더욱 강하게 커플링 됩니다. 며칠 피곤한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이거나 아침에 웃으며 인사하는 등의 상호작용이 없는 환경에서 동료들은 무엇으로 원격근무자를 평가할까요?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과 협업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스스로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에 부응하는 성과를 낸다면 누구도 원격근무를 비난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삼십 년 후 사람들은 발전된 기술 덕분에
옛날에 사무실이란 것이 존재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 리차드 브랜슨(버진 그룹 창업자)


책의 말미에 인용된 리차드 브랜슨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요즘입니다. 원격근무는 장단점을 논할 주제조차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이전엔 없었기 때문에 못 했고, 지금은 가능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업무의 방식입니다. 단, 책에서 언급했던 많은 제한점과 사무실 업무 방식과의 차이를 명확히 안다면 말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긴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라는 수상 소감이 크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무실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재능 있는 이들과 더 행복한 회사를 만들 수 있다"라는 소감을 남기는 책 <리모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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