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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디허니 Jan 24. 2018

우리의 삶엔 앙상블이 필요하다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에 대하여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보통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술을 하는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몇 가지 있는데,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1. 자기만의 철학이나 소신이 뚜렷하다.

2. 생각이나 가치관이 독특하다.

3. 개인주의가 강하며 사회성이 떨어진다.


 다른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으나, 음악을 하는 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기엔 꼭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내면은 보다 견고해지고 깊어지는 반면에, 외부의 자극이나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둔감해지고 크나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 또한 개인의 기량을 갈고닦기 위해 필연적으로 많은 시간을 개인 연습에 투자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아마 위와 같은 성향을 일부 띄게 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재작년 여름쯤,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며 연락이 온 친구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거의 10년 만에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물론 공부에 집중하기 위함이었겠지만, 그동안 거의 연락이 되지 않아 소식이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의 모습과는 달리 마치 갓 세상에 나온 어린아이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어색해하고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화를 이어가는 방법에서부터 소맥을 말아 마시는 방법까지도. 그 모습을 보며 많이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도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친구처럼 대학시절 때 한동안 방에서 개인 작업에만 몰두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학과 동기와 피아노 전공이었던 후배가 함께한 술자리에서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피아노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후배의 소식을 전해 들은 게 기억나서, 연습은 잘 되어가냐고 말을 해야 할 것을 엉뚱하게 말해버린 것이다.


나 : "요즘 피아노는 잘 쳐?"
후배 : "(잠시 침묵 후 싸늘한 표정으로).... 오빠보다는 잘 칠걸요?"
나 : "(순간 멍해짐)....."
동기 : "..... 아... 피아노 연습이 잘 되냐고 물어본 거겠지 하하하!!"
나 : "..... 마.. 맞아. 내가 사람을 너무 오랜만에 만났나 봐... 말이 헛나왔네. 미안... 하.. 하하..."


 다행히 술자리에 함께 있었던 동기가 재치 있게 수습해준 덕에 대참사는 면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흔히 말하는 이불킥을 하고 싶어 질 때가 가끔 있다. 물론 여태껏 살아오며 이 외에도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중에서도 이 에피소드는 단연 으뜸가는 실수 중 하나이다.




 이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 보면, 나를 감싸고 있는 세상과 거리감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최근 모 시인이 거주하던 월셋집을 비워달라는 말을 듣고, 한 호텔에 장기투숙을 하고 싶다며 메일을 보냈다는 글을 SNS에 올린 것도 아마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한다. 분명 그 의도는 나쁜 것이 아니었겠지만, 그저 시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해있다 보니 아마 세상과의 교감능력이 잠깐 부족했었던 탓으로 인해 생긴 해프닝이었으리라.


 음악이 지닌, 다른 예술 분야와는 다른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앙상블'이다.

'조화'를 뜻하는 이 용어는 보통 음악에서는 여럿이 모여 이루어지는 합주를 의미한다. 문학이나 미술 등 철저히 작가 개인의 세계를 오롯이 작품에 투영하는 것이 중요한 다른 예술에 비해, 대부분의 음악활동은 혼자서가 아닌 다른 뮤지션들과의 협업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즘엔 혼자서 작곡과 연주와 노래까지 해결해버리는 싱어송라이터도 많지만, 보통 한 곡의 음악은 작사/작곡/편곡가와 연주를 담당하는 세션맨, 보컬리스트, 그리고 레코딩과 믹싱, 마스터링을 맡는 엔지니어와 그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프로듀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소통하며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다. 많은 예술 분야 중 대중성의 관점에서 보면 음악이 다소 우위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앙상블'의 요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앙상블은 좁은 시각에서는 하나의 음악을 여럿이 함께 연주하는 행위이지만, 넓게 본다면 한 개인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는 행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기만의 생각과 신념에 갇혀있기보다는 항상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조화를 이룬다면, 서로를 오해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다툼과 비방, 갈등이 지금보다 적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삶엔 분명 앙상블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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