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래 Feb 07. 2020

감자 라면 반 개

-다시 쓰는 사랑이야기 04: 소통의 어려움

“믿지 못하겠지만 저는 먹는 게 너무 까다로워서 걱정이에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이는 식탁 위에 있는 음식을 깨작거렸다.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그 말을 했다. 그이는 지나칠 정도로 뚱뚱했다. 나중에 보았지만 일어나서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형식과 내용이 어긋난다. 그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맛있게 좀 드세요. 나 역시 형식과 내용이 맞지 않는 말을 했다. 분위기에 적응해야 했다. 

요즘 나도 같은 말을 한다. 배는 고프지만 입맛은 없고 몸은 힘들지만 잠들지 못해요. 언제부턴가. 

새벽에 일어나 물 한 잔 들이켜고 글을 두 편 썼다. 짧은 글 하나, 전에 썼던 것을 거의 다시 쓰다시피 다듬은 것 하나.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다. 


오늘은 인천에서 오래된 제자님들과 강독하는 날이다. 라캉에 대해. 그는 언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무의식도 언어로 된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공감한다. 우리는 언어로 세상을 만들지 않는가. 감각은 언어화되어 세상이 된다. 그 감각은 입맛처럼 길들여진 해석을 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원래 그대로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어쩌면 오랫동안 우리 선조들이 조각해 놓은 것에서 조금 변한 정도일 것이다. 기술이 바꾼 세상이란 것도 있고, 자연환경의 변화도 있고, 사람의 계획을 벗어나는 부작용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뭔가 조금은 먹어야 했다. 귀찮아서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한 개는 많은데...... 반 개를 끓이면 나머지는 꼭 버리게 된다. 그래도 남겨 두기로 했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맛있게 끓여 놓고는 먹다가 말다가 먹다가 말다가 열 번은 되풀이했을 것이다. 누군가 옆에서 한마디 했다. 그냥 좀 맛있게 먹어요. 굶어 죽을 것도 아니잖아욧! 그 사람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나면 대개는 마음이 편치 않아요. 정말 우리는 자기 생각을 제대로 주고받을 수 있기나 한 걸까요? 언제부턴가 믿음이 밑바닥부터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그럴 수밖에 없죠. 모두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거든요. 오해가 생기고 질문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도 그런 이유잖아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믿어도 되는 것인지. 상대가 한 말뿐만 아니라 내 말도 역시. 내 마음은 무엇일까. 내용과 형식이 어긋날 때 소통도 어긋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을 깨닫고 나면 많이 한 말 때문에 질문이 쏟아진다. 머릿속에서 끝없이 웅성거린다. 

다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만들어지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말뜻이다. 이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고.

입맛이 없어서 라면을 끓였다고 해도 누가 믿겠는가. 남김없이 다 먹었고 그릇은 깨끗하게 씻겨 빛내고 있는데. 쓰레기통에는 빈 봉지가 가득 차 있고, 음식물 쓰레기 봉지도 터질 듯한데. 끊임없이 먹을거리 재료를 주문하고 있는데. 

다행히 몸무게가 조금은 증명해 줄 것 같다. 꽉 조이던 옷이 내 몸을 풀어준 것도. 허리띠가 붙잡지 않으면 흘러내리게 된 바지도. ^^

작가의 이전글 잊혀진 꾸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