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래 Feb 08. 2020

김치볶음밥

-다시 쓰는 사랑이야기 05

아무래도 청소기를 한 번 돌려야겠다. 부엌 바닥을 닦고 일어나 보니 개수대부터 정리해야겠다. 먼저 식기 건조대에 있는 그릇들부터 찬장에 넣었다. 비우고 보니 건조대 바닥이 보였다. 바닥 물받이를 씻었다. 그러고 보니 가스레인지 바닥도 엉망이다. 넘쳐 흘러서 타버린 것들, 기름이 뿌려져 굳은 것들이 지저분했다. 쏘주를 뿌려 닦아내었다. 나는 쏘주를 마시지 못한다. 술자리가 끝나면 남은 쏘주를 가져와 이렇게 쓴다.

이런 청소는 오랜만이다. 그냥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얗게 빛나는 깨끗한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씨앗이 된다. 반짝반짝하게 닦아내었다. 근대화시기에 동양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번역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민중이 주인이라는 개념은 기억속에서 찾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배가 고팠다. 밥통에는 밥이 없었다. 쌀을 씻어 앉혔다. 그러고 둘러보니 오늘따라 식탁이 너무 복잡하고 지저분하다. 모두들 제자리로! 정리한 다음 식탁을 세 번 닦았다. 그러고 나니 '보기에 좋았더라'. 개수대에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는 그대로였다. 아마 십 분쯤? 설거지를 했을 것이다. 

아참, 밥 먹기 전에 약을 먹어야지. 식전 약 하나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 많이 마셨다. 

스마트폰을 보니 현관 앞에 배달된 게 있는 모양이다. 나가보았다. 포장을 풀고 배달된 것을 냉장고에 챙겨 넣었다. 현관에 쌓여있는 것들도 치웠다. 들일 건 들이고 버릴 건 버리고.

뭘 먹을까? 생각하면서 부엌에 들어섰다. 밥이 다 된 지 벌써 삼십 분이 지났다. 일어나 청소를 시작하고 꽤 긴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다.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었다. 어제 사 둔 돼지 앞다리 살이 있다. 조금만 잘라서 간을 했다. 무슨 고기든 미리 좀 재 두어야 맛있다. 나는 굴소스를 많이 쓰는 편이다. 간장 조금, 마늘 가루 듬뿍, 고춧가루 조금, 후춧가루 조금, 참기름 조금, 맛술 조금 이렇게 넣고 조물조물한 다음 오 분쯤 두면 된다. 사탕수수 발효해서 만든 가루도 조금 친다. ^^ 김치를 꺼내서 작은 크기로 잘라두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재둔 고기부터 볶는다. 웬만큼 익으면 다져두었던 김치를 넣고 함께 볶는다. 거기에 밥을 넣고 다시 조금 더 볶는다. 선 자리에서 조금 먹었다.

콜드브류 커피에 우유를 섞은 카페라테를 만들어 서재로 왔다. 

김치볶음밥은 금방 만들었지만 그럴 수 있게 해주는 집안 정리에 들인 시간이 서너 시간이었다. 무슨 일이든 핵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늘 기승전결이 있다.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승전이다. 어떤 기승전 과정을 거치는가. 그 과정이 얼마나 행복한가.  

기승전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음식은 무엇일까? 갑자기 그 질문이 떠올랐다. 해삼탕? 건해삼을 불려서 먹을 만하게 만드는 데 삼일쯤 걸린다. 끓였다 식혔다를 되풀이하면서. 해삼탕을 만들어 먹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해삼을 잡아서 건조하는 데는 도대체 얼마나 걸릴까? 건해삼은 돌덩이처럼 작고 단단하다. 다 불리고 나면 서너 배쯤 커지는데.

라면 같은 건 금방이다. 잘 생각해 보면 '금방'을 위한 준비 과정이 있었다. 김치볶음밥도 금방이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집안 정리는 두 시간이 걸렸다. 따지고 보면 그 십 분도 다른 사람들이 잘 준비해준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 돼지를 키웠고, 잡았고, 장만해서 정육점까지 가져다 놓은 것을 내가 조금 사 왔다. 김치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결과든 누군가 오랫동안 공들인 것이다. 어떤 것에든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 기쁨이 뒤섞여 있다. 정현종의 아포리즘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자주 그의 <방문객>을 떠오른다. 저절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전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것이 다 그렇다. 그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온다.

작가의 이전글 감자 라면 반 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