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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y Mar 11. 2021

"인생 브랜드가 있나요?"


“인생 브랜드가 있나요?”

"..."

“...”

불쑥 받은 질문에 훅 하고 심장이 찔리던 순간.

무언가 툭 떨어졌고, 그렇게 멍하니 며칠을 보냈습니다.


브랜딩에 종사하면서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선호' 브랜드는 많지만 ‘인생'이란 단어가 붙는 순간 기꺼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개별성이라는 고유함이 묻어나는 순간 '인생'이라는 단어에 생명력이 생기니까요. 어떤 브랜드가 소중하다는 의미는 욕망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적인 시간 감정 서사를 기억하는, 향

비교적 후각에 예민한 편이어서 향으로 그 당시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는 편입니다.

밀려드는 흙의 기운이 가득한 공기로 마법처럼 절로 봄을 맞이하고,

무거운 나무의 냄새는 한여름에 억새와 바람 사이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며,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훅 불어 들어오는 낯선 감정은 늘 시린 기억입니다.

햇볕 아래 스프링쿨러에 흠뻑 젖은 짙은 풀냄새의 잔디밭은 그대로 어린 시절을 소환해 내곤 합니다.


이렇게 향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 중 하나와 연결되고, 나만의 이야기로 간직하고 있는 뇌관을 건드리는 일이어서 그 기억의 종착지는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생한 방식으로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 향의 마력이고

후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을 만들기에 완벽한 도구이기도 하며

운이 좋다면 공감되는 향기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은근한 시도가 되기도 하죠.


제게 있어 향은 감정을 지배하고, 강력한 기억으로의 귀환을 만들어 내며, 현재에서 과거가 교차하는 발화점이자, 순간의 특별함을 위한 격식을 차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의미부여가 필요한 '인생' 브랜드는 향수여야 했습니다.


자립으로서 존재의 이유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 영화 <향수> -



크리드 어벤투스(Creed Aventus)

크리드 향수의 어벤투스 향에 대한 동경은 가질 수 없는 상징성 때문인데요. 남성 향수이기에 취할 수는 없으나 2m 밖에서도 돌아보게 만드는 거부할 수 없는 향의 근사함과 우월함을 지닌 브랜드입니다, 적어도 제게는요.


비 온 뒤 상쾌해진 산책로와 함께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는 골목길이 더없이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향기가 자극하는 기억의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파리는 놀랍게도 거리 곳곳마다 크리드 어벤투스의 향이 은은하게 배어있습니다. 크리드의 고향이자 어벤투스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나폴레옹의 도시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파리는 그렇게 제 심장을 지배하던 도시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크리드를 맴돌며 감정을 탐험하며 느긋이 넉넉한 태도로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듣습니다. 아낀다는 건 그런 의미 같습니다.


향수를 만들기 위한 인터뷰를 하는 데만 1년 여가 소요된다는 크리드 오더메이드의 인간적인 방식, 한 사람을 위한 단 10L의 향을 만들기 위해 5년을 공들이는 조향을 창작하기 위해 다하는 진심. 이러한 진정성들이 더해진 크리드는 제게 기꺼이 인생 브랜드가 되어주었네요.

        

“Ladies, a man will never remember your handbag,

but he will remember your perfume.”  

– Olivier Creed -


잔잔하게 퍼지는 너울처럼 나누고 싶은 질문,

어떤 인생 브랜드를 가지고 있나요?”


브랜드를 자신의 인생에 끌어들이는 과정 속에서

또는 브랜드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길어내는 일.


브랜드 과부하 시대에,

내가    있는 소중한 장면이 되어줄 겁니다.





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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