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한달살기 네번째 기록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온 사람들 중 신혼여행을 온 부부나 나처럼 혼자온 사람들을 빼면, 대부분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았다.
그들의 삶을 옆에서 보고 느끼면서, 나는 누군가의 엄마가 되지 않는 삶이 꽤 괜찮게 느껴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가져 본 적은 없었다. 예전부터 아이는 낳고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특히 결혼에 대해서는 남들이 다 하니까 하고싶었고, 모르긴 몰라도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는 가지게 될 수도 있겠거니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살던 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하고 나의 마음가짐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구체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있게 목격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하는 외국여행, 아이의 무해한 웃음과 그들의 벅찬 첫경험, 그로 인해 덩달아 기뻐하는 부부의 유대감과 안정감등이 느껴저서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앉아있어도 하나의 ‘가족, 공동체’로서의 무언의 안정감이 진하게 느껴졌다.
포테이토 헤드라는 스미냑에 있는 비치클럽을 갔을 때 석양이 질 무렾 수영장에서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안고 던지며 물놀이를 해주고 엄마는 밖에서 그 모습을 행복하게 지켜보며 사진찍고 웃는 평범해보이는 일상을 보면서 그들의 행복감을 짐작할 수 있기도 했다.
반면 나는 때때로 외로웠고, 가끔 혼자 무엇을 해야하나 우두커니가 되었고, 애써 동행을 구하지 않은 날이면 좋은 풍경 맛난 음식 앞에서 감정을 나눌 사람이 없었으며, 동행을 구한 날에도 일회성으로 그치는 어색한 대화를 나눌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그 자유감이 나는 좋았다. 그건 정말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미친 기분이었다.
온전한 그 자유 자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나는 자유다! 나는 솔로다! 라는 것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사람처럼 입고싶은 대로 입고, 운동하고 싶을때 운동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밤에 나가서 시간 제약 없이 술을 마시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설레기도 하고-
프리다이빙을 해 바닷속에 들어갔을때, 그 고요하고 적막한 가운데 귀에는 내 숨소리만 일정하게 들리고, 주변에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을 바라보며 수면 위를 가만히 쳐다볼 때면 내가 누리는 이런 온전한 자유로움이 행복하고 감격스러웠다. 이 것은 세상 그 무엇을 준대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생활을 비록 내 나이대 여자들이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고 그 이유가 있다고 해도- 나는 상관없었다.
그래,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남들이 해서, 그래서 나는 너무 늦은것 같아 발을 동동 굴렀는데 사실 제일 중요한건 내가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고, 세상은(하늘이든-신이든-우주든) 그 사실을 알았던 것이었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이 생활이 지겨워 질 때까지-
그래서 어딘가에 속박되고 누군가를 위해 내 재미와 시간이 희생되도 상관없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순리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서른넷의 철없다면 철없는 ‘나’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