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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Oct 20. 2018

아름답고 예쁜 물건

보다 더 예쁜 시간을 선물해준 ㅅ님께 





물건을 좋아하지만, 저를 위한 특별한 물건을 사 본 적은 별로 없어요. 제가 물건을 구매하는 첫 번째 조건은 필요성이고, 두 번째는 실용성, 그리고는 아름다움을 순으로 물건을 구매했던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아마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물건을 구매하기에는 제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죠. 때로는 예쁜 물건을 구매하기보다는 아름다운 곳을 보는 편을 택하곤 했어요. 혹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도 했죠. 그러나 저에게만큼은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조금만 비싸면 그만큼의 돈으로 다른 어떤 것을 몇 개나 살 수 있나를 계산하곤 했어요.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그런 물건을 실제적으로 구매하지는 못했던 거죠. 기껏해야 예쁜 문구용품이나, 아주 작은 인형 같은 거였죠. 그래서 ㅅ님이 선물해준 촛대와 초, 아름다운 커피잔을 받았을 때 사실 너무 놀랬어요. 너무 놀랬고, 또 내게 과분한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쩌면 이제껏 그런 아름다운 물건들을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내 안에 있는 욕구를 숨겼던 것 같아요.



선물로 받은 것들 정말 예뻐요. 같은 커피라고 하더라도 ㅅ님이 주신 커피잔에 커피를 마시고 싶을 만큼. 또 그럴 때 몇 배나 기분이 좋아지고요. 너무도 예뻐서 괜스레 커피잔 가장자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었는지 몰라요. 꼭 한 세기 전에나 썼을 법한, 촛대와 초도 그래요. 우리 집은 정말 별 볼 일 없이 꾸며져 있지만, 촛대에 초를 끼고, 불을 켰는데 정말로 이 공간이 달라졌어요. 예쁜 촛대와 초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제 마음부터 달라져 있었어요. 너무 설렜거든요. 그래서 퇴근 후 샤워를 하고, 불을 끄고, 피아노 음악을 고른 후, 피아노 음악이 켜짐과 동시에 초에도 불을 켜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쳤어요. 그리고는 그냥 하염없이 초가 녹아드는 것에 빠져들었어요. 초를 언제 이렇게 켜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친구가 준 캔들에 불을 붙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저는 예쁜 물건에 감탄하고 있어요. 언제나 경험이 물건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예쁘고 아름다운 물건으로 지금 행복하고,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거든요.



마력이 있더라고요. 초에. 순식간에 어린 시절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여러 감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어요. 어릴 땐 늘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아서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늘 베란다에 나와서 까만 밤과 시간을 보냈어요. 저 멀리 보이는 가로등과 이따금씩 쌩쌩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그 시간들을 보냈어요. 불안과 좌절과 불행과 슬픔의 밤들을. 가로등 불빛이나 별빛은 눈을 살짝 찡그리는 것만으로 아주 다양하게 변해요. 빛이 쪼개지기도 하고, 뭉치기도 하고, 아주 가늘게 새어 나오기도 하고. 그때 그 시간들에게서 배웠어요. 빛은 하나의 모양이 아니구나. 어쩌면 나도 더 괜찮은 내가 될 수 있겠구나, 변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어요.



그때에는 이따금씩 들리던 차가 지나가는 소리에도 부러워했었어요. 저 차는 저렇게 갈 곳이 분명해 보이는 것이 신기하고, 어쩜 저럴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어떻게 저런 뚜렷한 목적지가 있고, 확신이 있을 수가 있는 거지. 그땐 내 삶이 정해진 것이 하나 없었고, 그래서 너무너무 불안했거든요. 내 삶이 누구도 구원해주지 못할 구렁텅이에 빠질까 봐.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믿으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내 삶은 변할 수 있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지금 이렇게 살게 될지는 정말 몰랐지만요. 초를 보면서 그 시간들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지금 나 꽤 잘 살고 있구나, 새삼 깨달아요. 나도 그때와 많이 달라졌구나, 스스로 느껴요.  그리고 이 사실에 위로를 받아요. 여전히 그 크기와 모양은 다르지만 불안과 자책은 늘 있었거든요. 오늘만큼은 이렇게 따뜻하고, 행복해도 될 것 같아요.






하나의 초가 타들어가는데, 초의 모양은 시시각각 바뀌면서 자세히 보면 제각각 타올라요. 초의 심지와 원래의 초 형태와, 그 옆에 나란히 타들어가며 모양이 변하는 촛농도 저마다의 속도로 타들어가요. 참 예뻐요. 자연스럽게 촛농이 떨어지는 것도. 모양이 변하는 것도. 결국은 사라지게 되는 것도. 정말 하염없이 보게 만들어요.



늘 경험에 돈을 쓰고는 했지만, 오늘은 선물 받은 촛대와 초로  아주 행복하고, 따뜻하고, 눈물 나는 경험을 해요. 그냥 물건이 아니라 아주 아름답고,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 그런 거라 생각해요. 고마워요. ㅅ님은 물건뿐만 아니라 특별한 시간과 공간, 풍성한 감정,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함께 주었어요. 예쁘고, 멋진 초와 촛대를 사용함으로써 나라는 사람도 조금 더 특별해진 것 같아요. 저를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늘 경험에 돈을 쓰고는 했지만, 오늘은 선물 받은 촛대와 초로  아주 행복하고, 따뜻하고, 눈물 나는 경험을 해요. 그냥 물건이 아니라 아주 아름답고,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 그런 거라 생각해요. 고마워요. ㅅ님은 물건뿐만 아니라 특별한 시간과 공간, 풍성한 감정,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함께 주었어요. 예쁘고, 멋진 초와 촛대를 사용함으로써 나라는 사람도 조금 더 특별해진 것 같아요. 저를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이따금씩 나도 예쁜 것들을 사보려고요. ㅅ님의 취향을 따라가려면 아주 멀었지만, 저도 저만의 취향을 만들어가 보려고요. 그냥 반짝이는 것들이 아닌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빛나는 빈티지 물건들처럼 저도 저만의 취향을 만들고, 수집하려고요.



오늘 밤은 아주 아주 따뜻하게 잘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초가 이제 거의 다 타들어가네요. 방금 불을 껐어요. 아주 적게 남은 심지의 초는 처음의 모양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모양이 되었어요. 이대로도 정말 멋있네요. 추워지는 계절, 따뜻한 시간 고마워요. 아름다운 것을 느끼고, 경험하게 해 주어서 고마워요. 한동안 이 기억이 제 마음속을 환하게 밝힐 것 같네요. ㅅ님에게도 이 따뜻함이 전해지길. 그럼 ㅅ님도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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