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Surf, Massage
우붓에서 꾸따에 온 이후에는 하루 종일 밥 먹고 서핑하고 마사지만 받았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파도가 좋은 시간대에 맞춰서 바다에 나가서 서핑을 했다. 서핑하고 쉬다가 또 서핑하다가 또 쉬다가 서핑하다가. 지쳐서 더 이상 못 하면 밥을 먹으러 갔다. 많이 한 날은 6시간까지도 했다. 발리에서의 일정이 끝나가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남아서, 디저트 같은 것도 잔뜩 사 먹고 먹고 싶은걸 다 먹었다. 이제 익숙해진 거리에서 맛있었던 식당에 또 가고 또 갔다. 마사지도 하루에 두 번씩 받았다. 완전 Eat, Surf, Massage 생활을 했다.
다 좋았는데, 한 가지 정말 아쉬웠던 것은 숙소가 너무 별로였다는 점. 침구도 너무 눅눅하고 냄새가 났으며, 방 전체에서 곰팡이 냄새가 심해서 계속 베란다 문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와이파이도 계속 끊어져서 거의 안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휴대폰 데이터마저 신호가 안 좋아서 계속 끊겼다. 침대에 누워있을 때 계속 심한 발 냄새 같은 게 나서, 이게 어디서 나는 것인가 찾아보니 베개에서 나는 것이었다. 베개들을 전부 바닥 구석에 던져버리고 내 기내용 배게를 베고 잤다. 침구도 너무 눅눅하고 찝찝해서 내가 가져온 무릎담요와 스포츠 타월 등을 깔고 그 위에서 잤는데, 내 담요와 타월에도 이상한 발 냄새가 옮고 말았다. 침구 상태가 너무 안 좋고 방 전체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니 잠을 잘 자기도 힘들었다. 첫날엔 곰팡이 냄새가 너무 심해서, 폐 전체가 곰팡이 포자로 꽉 차는 악몽을 꿨고, 숙소에 있을 땐 계속 베란다에 나가 있었다. 결국 셋째 날 아침에 보니 배에 이상한 벌레 물린 자국들까지 생겨있었다. 이게 바로 베드 버그에 물린 건가 싶어서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다행히 많이 간지럽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뭔가 찝찝했다. 또한 말려놓은 빨래를 정리하려고 집어 드는데 손가락이 뭔가 엄청 따끔했다. 벌레에 물린 건지 까시가 박힌 건지 모르겠지만, 손가락에 뭔가 박혀있는 것 같아서 빼보려고 애를 썼지만 빠지지도 않고 아프고 찝찝했다. 다행히 손가락은 며칠 후 괜찮아졌지만, 배에 벌레 물린 자국은 한 달 반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그렇다. 여행기는 결국 이렇게나 밀려버린 것이다)
물론 가격에 비해 호텔 외관과 수영장이나 위치는 훌륭했다. 어쩌면 다른 방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안 갈 것이다.
우붓에서 묵었던 숙소는 정말 깨끗하고 쾌적했는데, 진짜 돈 몇 푼 아낀다고 너무 많은 것을 손해 본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너무 저렴한 호텔은 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호텔스닷컴 리뷰를 너무 믿었다가 피를 본 것 같았다. 저렴한 호텔을 가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비싼 호스텔을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다음 일정인 방콕에서는 위생적이라는 평가를 집중적으로 봐서 좀 좋은 호스텔을 예약했다.
서핑을 하러 우붓에서 다시 꾸따로 돌아왔으니, 일정의 중심은 서핑이었다. 강사 Wayan에게 서핑하기 좋은 시간대를 매일 묻고 그 시간에 나와서 지쳐서 더 이상 못 할 때까지 서핑을 했다. 발리만큼 서핑하기 좋은 비치가 드물다고 해서 떠나기 전에 실컷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강습도 두 번 더 받았는데, 턴 하는 방법과, Green wave를 타는 법을 배웠다.
보드가 클수록 중심 잡기가 쉬운데, 처음에 9, 10 피트짜리 보드로 타다가, 8피트짜리로 바꿔주었다. 확실히 8피트짜리가 중심 잡기가 더 어려워서 처음에 엄청 물에 빠졌지만,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8피트짜리에서 중심을 잡고 파도를 탔을 때의 성취감은 정말 좋았다.
난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우고 꾸준히 해와서 물을 안 무서워하는 편인데, 이번에 서핑을 하면서 파도의 강력함과 무서움을 조금 깨닫게 되었다. 서핑 보드를 끌고 파도를 기다리며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 멀리서 파도가 일어나서 천천히 다가오는데, 저게 파도인가 아닌가 하던 작은 물결이 가까이 다가오며 급격히 높아진다. 파도는 부서지는 지점에서 제일 강력한데, 부서지는 지점을 피해 그 앞이나 뒤에 서있어보려 노력하지만 꼭 내가 서있는 지점에서 파도가 부서지기 일쑤였고, 그때 제대로 대처를 못하면 서핑 보드는 저 멀리 날아가고, 파도한테 정면으로 싸대기를 맞으며 눈, 코, 귀, 입으로 온통 물벼락이 들어온다. 파도를 타는 지점인 라인업까지 가는 것 자체가 파도와의 씨름이었는데, 그래도 나름 바다와 투닥거리며 친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심취할 수 있었다.
참고로 서핑하러 라인업까지 가는 게 정말 칼로리 소모가 심해서, 서핑을 하면서 정말 먹고 싶은 것 다 배 터져라 먹었는데도 바지가 헐렁해질 만큼 살이 빠졌다. 서핑은 다이어트에 최고!
예상보다 서핑을 많이 하는 바람에 가져온 원데이 렌즈가 동이 났다. 안경을 끼고 하면 100% 분실한다고 해서 생눈으로 서핑을 하게 되었는데, 멀리서 오는 파도가 잘 안 보여서 파도를 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발리에서 안경점을 못 찾아서 렌즈를 새로 구매하지도 못했다. (발리에 서핑하러 오시는 시력 안 좋은 분들은 필히 여분의 원데이 렌즈를 챙겨 오시기를)
Green wave를 타는 게 정말 어려웠는데, 혼신의 힘을 다 해 죽어라 패들링 해서 Green wave를 한 두 번 타내는 데 성공했다(뒤에서 상어가 쫒아온다는 느낌으로 패들링을 해야 되더라). 감이 왔을 때 계속해야 실력이 늘 텐데, 더 이상 못 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한국 돌아가면 또 서핑하러 가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