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과 일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정은 Aug 05. 2023

젤리곤충기 1

무당벌레

둥글고 반짝거리는 빨강이다. 저 앙증맞은 것이 어떻게 눈에 띈 것인지 신기할 만큼 작다. 팔랑거리는 나뭇잎 위에 바짝 달라붙어 몸을 웅크리고 있는 무당벌레가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붉은 바탕에 찍힌 검은색 물방울무늬는 보기 좋게 대칭을 이룬다.

벌레나 곤충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무당벌레만큼은 예외가 아닐까? 어쩌다 벌이나 사마귀, 메뚜기 같은 것들이 나타나면 괴성을 지르며 도망가면서도 무당벌레 앞에선 달랐다. 귀여운 모습에 반해 한참을 들여다봤고, 심지어는 한 번쯤 만져볼까.. 충동이 일었다.

무당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방향을 틀어주니 더욱 잰걸음으로 이동한다. 다시 손가락으로 툭, 마침내 화가 난 것일까? 비밀기지의 문이 열리듯 붉은 등딱지가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근사한 날개를 꺼낸다. 그리고 윙.

날아가버렸다.


이어지는 곡

혁오의 위잉위잉


#평소의행복 #무당벌레이야기



_


2년 전 여름으로 기억한다. 젤리의 조그만 팔뚝에 무당벌레가 앉았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가 관찰한 모습을 평소행에서 전했다.


성별이 다른 덕분인지 젤리를 키우면서는 여태껏 눈여겨보지 않던 것을 한참씩 바라보게 된다. 거미줄이나 지렁이 같은 것들.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공벌레를 처음 보던 날에도 평소행에 옮겨 적었는데 아들 엄마들이, 어제 본 아들의 모습 같다고도 하고.. 이젠 문 꽝 닫고 들어가는 사춘기 아들의 오래전 모습을 떠오른다며 그리워했다.


아이들과 놀다가 새롭게 발견하거나 좋았다고 느껴질 때 시간이 허락되면 메모장에 메모한다. 묘사가 필요할 땐 사진을 찍어둔다. 그날밤 나의 낱말을 총동원해 최대한 비슷하게 적는다. 묘사하는 글쓰기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 그냥 어떤 순간을 그리듯 적어두면 청취자들은 각자 자기가 아는 장면을 떠올린다. 저마다의 소중한 기억을 꺼내보는 내가 좋아하는 시간.





#라디오 #오늘아침정지영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동네 부채 삼인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