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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은 Aug 04. 2023

우리 동네 부채 삼인방

각자의 리듬

마을에 작은 도서관이 있다. 그 앞으론 아담하고 예쁜 연못이 있는데 오리도 고 거북이도 고 자라도 고. 버드나무도 예쁘다. 벤치가 여럿 있고, 정자도 하나 있는데 그 자리가 할머니들 쉼터가 되어준다. 며칠을 지나치다 보니 꼭 세 분이 앉아계셨다.  서로 약속을 한 것 같지도 않은 것이 먼저 오는 분, 한참 후에 나타나는 분, 서로 다르다. 그냥 약속 없어도 늘 그 자리에 오면 있겠거니 하시는 게 아닐까. 날씨가 더워지면서 할머니들은 손에 하나씩 부채를 쥐고 등장하셨다. 나란히 앉아서 부채질을 하시는데 서로의 리듬이 제각각이라 정신이 없다가도 꼭 한 번씩은  박자를  듯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었다. 메모장을 열어 부채 3인방이라고 간단히 적어두었다. 각자의 리듬 엇갈리는 부채.


그리고 어제, 8월 3일 평소행에서 소개했다.


*


할머니 세 분이 공원 한쪽 그늘에 나란히 앉았다.  딱히 무언가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안보는 것도 아니고 조금은 무관심하게 응시한다. 집중하는 것은 오직 '부채질'이다.

어디에서 나눠준 것인지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똑같은 부채 석 장이 각자의 손에 잡힌 채 어지럽게 흔들린다. 부채를 부치는 일 하나에도 사람의 성격이 보이는 것이 재미있다. 가장 왼쪽은 보통의 부채질, 얼굴에서 약간 떨어져 턱과 볼, 근방을 사선으로 부친다. 중간에 계신 분은 턱과 어깨, 겨드랑이. 수시로 위치를 바꾸며 곡예비행을 하듯 방향을 꺾는다. 다른 한분은 느긋하다. 슬로우 슬로우 천천히 바람을 몰고 올라갔다가 다시 반대쪽 바람을 몰고 내려오는 한가로운 부채다.

정박의 부채와 수시로 리듬을 바꾸는 부채 느긋한 부채. 각자 팔랑이다가 한 번쯤 박자가 맞는 순간엔 그 모습이 어린아이의 율동처럼 귀엽게 보인다.

이어지는 곡

#바람의노래 #조용필


*


부채 3인방이라고 쓰다 보니, 그룹 SES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야기에 이어 들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오선배님께서 '바람의 노래'를 이어주셨다.


노래를 듣는 사이 청취자들의 이야기가 보태졌다. 할머니들이 똑같이 들고 계신 부채엔 커다랗게 농협이라고 적혀있을 것 같아요. 할머니들의 착장은 왠지 사각거리는 흰색 소재일 것 같아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만), 노래가 중반부로 흘러갈 땐 선곡에 대한 반응도 도착했다. 부채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이 '바람의 노래'로 연결되다니 왠지 뭉클하네요. 노래 가사가 왜 이렇게 와닿는지 눈물이 나요.


아주 나중에, 내 유일한 구독자에게 물음이 도착했다. "오늘 평소행 내용이 어떤 거였나요? 눈물이 난다는 내용을 들었어요."

 

노래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냥 동네에서 부채질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귀엽고 다정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성격과 처지대로 부채가 속도와 방향을 달리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서로 상관없이 다르게 움직이다가도 중간에 한 번씩 리듬이 맞는 순간이 괜히 좋았다. 어쩌면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해줄까? 기대하면서 어떤 메시지도 없이 최대한 비슷하게 묘사했다.


할머니의 모습과 조용필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어떤 감정이 있었던 것 같다.


 *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수 없다는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것들을 사랑하겠네

조용필, 바람의 노래



나의 유일한 구독자가 내용을 궁금해하시어 후기를 적어보았다.



#라디오 #오늘아침정지영입니다 #펑소의행복


지디의 낭독으로 들으면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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