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억
집집마다 똑같은 구획으로 나뉜 아파트. 하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집이 있다. 어떤 집의 베란다에는 키 작은 장독대가 나란히 놓여있다. 그 위 빨래건조대엔 각을 맞춘 수건이 보기 좋게 걸렸다.
집 바깥에 빨래를 널고 장독대를 내놓는 일이 전에는 무척 흔했다. 모처럼 햇살 좋은 날이면 집안에 있는 모든 장독대의 뚜껑을 열었다. 붉은 고추장은 따가운 햇살을 먹고 더욱 매콤하게 익었고 된장은 한층 구수해졌으며 간장은 달고 짭조름해졌다. 솔솔 새어 나오는 장 익는 냄새와 햇살이 뒤엉켜 한없이 나른하던 시간, 유난히 요란한 벨소리가 울리기도 했는데 십중 팔구는 외출한 엄마의 다급한 전갈이다.
-비 올 것 같다
뚜껑 덮어라.
마른하늘에서는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 당황해 급히 장독의 뚜껑을 덮고 있으면 바람처럼 달려온 다른 가족이 빨래를 걷었다. 해가 뜨고 비가 내리는 일이 그땐 참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