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구름이
땅으로 내려와 뿌리를 내린다면
혹시 이런 모습이 아닐까.
기다란 줄기를 낭창하게 뻗고
하늘 향해 둥실, 초록색 구름이 떴다.
감자를 닮은
조막만 한 열매들이
땅속에 몸을 숨겼다가
초여름이면 뿅!
작은 잎사귀를 낸다.
날이 더워지면
무섭게 자라기 시작해
울창한 숲을 만든다.
그 모습이 구름 같기도 하고
물 위의 연잎을 닮기도 한 ‘토란’,
줄기는 곧게 뻗어
어린아이의 키를 뛰어넘고
잎사귀는 넓게 펼쳐지며
둥글둥글 너울진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마치 방수처리가 된 것처럼
동그랗게 방울지는데
그 모습이 영롱하고 신비롭다.
우산으로 써도 좋고
햇볕을 가려도 좋은 토란잎을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사내와 아이가 이마에 쓴 채 걷기도 한다.
정수리에 꽂아둔
토란잎이 우스꽝스럽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늘을 만든다.
걸을 때마다
흔들흔들 휘청휘청
경쾌하게 휘어지며
이마에 닿는 볕을 가려준다.
쉽게 지치는 여름을
지루하지 않게
초록의 기운을 뿜어댄다.
+평소의 행복,
토란잎 드리워진 청량한 여름을 그려봅니다.
+이어지는 곡
'기쿠지로의 여름' 중에서 [mad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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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주말 농장인데 그것도 농사라고 엄마를 만나면 농사 얘기를 하고 모종이나 씨앗을 주고받는다. 늦봄에는 엄마가 말라비틀어진 토란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다. 트렁크에 넣어두고 한참만에 꺼내 밭 귀퉁이에 쏙쏙 꽂았는데 한 달쯤 지나 뿅! 진짜로 뿅! 하고 싹이 나왔다. 잎사귀가 빼뚜름하고 끝이 뾰족했다. 방금 나온 싹인데 기죽거나 여린 느낌 하나 없이 새싹의 생명력으로 낭창하게 솟았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펼쳐지는 잎사귀가 날이 갈수록 대단했다. 기세가 얼마나 좋은지 구김하나 없이 짱짱하다. 비가 내릴 때면 구슬처럼 영롱하게 방울졌다. 아 예뻤다.
음악 듣는 사이엔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어릴 때는 진짜로 토란잎을 꺾어 양산처럼 우산처럼 들고 다니며 비를 막고 햇볕을 막았다는 이야기.. 토토로가 들고 있는 것도 토란잎이었냐는 질문.. (찾아보니 자이언트 아욱이라고 하는데 진짜인지 알 길이 없네..) 아버지가 즐겨드시던 토란국 이야기도. 아주 단순하고 짧은 하나의 장면을 천천히 그림 그리듯 묘사하면, 듣고 있는 분들은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고 어린 시절에 다녀온다. 음악 한 곡을 듣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