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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은 Jul 14. 2024

토란

땅에서 솟아난 초록색 구름

하늘의 구름이

땅으로 내려와 뿌리를 내린다면

혹시 이런 모습이 아닐까.


기다란 줄기를 낭창하게 뻗고

하늘 향해 둥실, 초록색 구름이 떴다.


감자를 닮은

조막만 한 열매들이

땅속에 몸을 숨겼다가

초여름이면 뿅!

작은 잎사귀를 낸다.


날이 더워지면

무섭게 자라기 시작해

울창한 숲을 만든다.


그 모습이 구름 같기도 하고

물 위의 연잎을 닮기도 한 ‘토란’,


줄기는 곧게 뻗어

어린아이의 키를 뛰어넘고


잎사귀는 넓게 펼쳐지며

둥글둥글 너울진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마치 방수처리가 된 것처럼

동그랗게 방울지는데

그 모습이 영롱하고 신비롭다.


우산으로 써도 좋고

햇볕을 가려도 좋은 토란잎을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사내와 아이가 이마에 쓴 채 걷기도 한다.


정수리에 꽂아둔

토란잎이 우스꽝스럽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늘을 만든다.


걸을 때마다

흔들흔들 휘청휘청

경쾌하게 휘어지며

이마에 닿는 볕을 가려준다.


쉽게 지치는 여름을

지루하지 않게

초록의 기운을 뿜어댄다.


+평소의 행복,

토란잎 드리워진 청량한 여름을 그려봅니다.

+이어지는 곡

'기쿠지로의 여름' 중에서 [mad summer]



_


손바닥만 한 주말 농장인데 그것도 농사라고 엄마를 만나면 농사 얘기를 하고 모종이나 씨앗을 주고받는다. 늦봄에는 엄마가 말라비틀어진 토란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다. 트렁크에 넣어두고 한참만에 꺼내 밭 귀퉁이에 쏙쏙 꽂았는데 한 달쯤 지나 뿅! 진짜로 뿅! 하고 싹이 나왔다. 잎사귀가 빼뚜름하고 끝이 뾰족했다. 방금 나온 싹인데 기죽거나 여린 느낌 하나 없이 새싹의 생명력으로 낭창하게 솟았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펼쳐지는 잎사귀가 날이 갈수록 대단했다. 기세가 얼마나 좋은지 구김하나 없이 짱짱하다. 비가 내릴 때면 구슬처럼 영롱하게 방울졌다. 아 예뻤다.


음악 듣는 사이엔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어릴 때는 진짜로 토란잎을 꺾어 양산처럼 우산처럼 들고 다니며 비를 막고 햇볕을 막았다는 이야기.. 토토로가 들고 있는 것도 토란잎이었냐는 질문.. (찾아보니 자이언트 아욱이라고 하는데 진짜인지 알 길이 없네..) 아버지가 즐겨드시던 토란국 이야기도. 아주 단순하고 짧은 하나의 장면을 천천히 그림 그리듯 묘사하면, 듣고 있는 분들은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고 어린 시절에 다녀온다. 음악 한 곡을 듣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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