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과 일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정은 Jul 14. 2024

살구

붉어진 뺨이 사랑스러운

이 사랑스럽고

향긋한 것을

여태 몰랐던 것이 억울할 정도다.


유월 무렵부터

슬그머니 과일가게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한다.


수박만큼의 존재감이 없으며

포도만큼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다.


자두도 아니고

복숭아도 아닌데

누군가 장난으로 반씩 섞어둔 것도 같다.


한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작고

씨앗을 둘러싼

짐짓 하트 모양의 형태는

자두를 닮았다.


표면의 잔털이 뽀송뽀송하고

무른 듯 부드럽게 씹히는 과육의 질감은

복숭아를 따랐다.


처음엔 그저 뽀얗다가

시간 지날수록 잘 익어

두 볼에 홍조를 띠듯 붉어진

살구를 맛본다.


깨끗하게 씻어

고운 살결에 대고

한 입.


팽팽하던 껍질이 비교적 쉽게 터지며

달콤한 과육이 입 안으로 쏟아진다.


자두와 복숭아를

번갈아 떠올리게 하면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적당하게

풋풋하고 은은한

맛과 향기가 만족스럽다.


계절을 거슬러 키울 만큼의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해서

오직 이 무렵에만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살구,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초여름의 열매.


+평소의 행복

오늘은 <살구의 계절>을 지나치지 마세요.

+이어진 노래

리사 오노 [Salade De Fruits]



-


살구와 산딸기는 인기상품이 아니라 그런지 시설재배를 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딱 그 시기가 아니면 맛볼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썼는데 청취자 중 한 분이 '살구와 산딸기는 철이 아니면 맛볼 수 없어서 꼭 제 때 챙겨 드신다'라고 사연을 주셨다. 어머! 내적 친밀감! 내 머릿속에 있지만 길이상 흐름상 적지 못한 이야기를 사연으로 받아볼 때 무척 기쁘다. 살구를 좋아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음악 듣는 사이에 도착했는데 아쉽게도 시간 지난 후에 도착한 귀여운 문자가 있었다. '몇 년 전 아버지께서 갑자기 살구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살구를 굳이 왜!라고 했는데 살구가 이렇게 대단한 열매였군요'하는 내용이었다. 살구 농부님 너무 소중합니다. 살구만 기다리는 살구팬들을 위해서 오래오래 맛있는 살구 농사 지어주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토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