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미 이치로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한 때 서점가를 휩쓴 베스트셀러였던 책 '미움받을 용기'를 나는 그 열기가 가신 시점에 읽기 시작했다. 책이 유행일 때, 내가 별로 좋게 보지 않던 사람이 이 책에 대한 애정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표현하고 있어서, 내가 인격적으로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좋아하는 책이라면, 분명히 나는 이 책에서 배울 것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위로가 필요한 어느 날, 집의 책장에서 엄마가 사둔 이 책이 눈에 띄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밑 줄 빼곡히 치고 절절히 공감하며 읽은 몇 안 되는 책이 되었다.
책은 아들러의 철학을, 철학가와 청년의 대화형태로 풀어낸다. 철학가가 하는 말은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풀어낸 아들러의 생각이다.
아들러가 제시하는 첫 번째 사고 전환은, 인생에는 의미가 없다는 아이디어다. 이유가 있어서 우리가 인생을 살게 된 것은 아니고, 어쩌다 우리는 이 인생을 활용하게 된 입장일 뿐이다.
이것은 목적론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거나 행동할 때, 과거에 어떤 원인이 있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내면 깊은 곳에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생각과 행동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불안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세... 그 친구에게는 '바깥에 나갈 수 없다'라는 목적이 먼저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불안과 공포 같은 감정을 지어내는 거지.
불행한 것은 '불행한 상태'를 자신에게 '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명쾌한 부분이었다. 사실 과학적 사실 외에,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은 확정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상당 부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심리가 논리적 근거에 의한 합당한 결론으로 생각하기 쉽다. 예를 들면 이별을 얘기할 때, 그동안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사실 좋았던 부분도 있기에 그동안 고통을 감수하며 인연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별을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상대의 온갖 단점과 고통스러웠던 과거만 떠올리며 선택을 정당화할 방법만 남기게 된다.
또 다른 뼈 때리는 예시도 있었다.
소설가를 꿈꾸면서도 도무지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이가 있네.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은 거라네. ‘나는 그런 재능이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살고 싶은 걸세. 5년, 10년이 지나면 "이제는 젊지 않으니까" 혹은 "가정이 있어서"라는 다른 핑계를 대기 시작하겠지.
내 얘기였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한 독서' 프로젝트도, 꿈을 실행하지 않고 물리적 책의 형태 속에 '가능성'으로만 간직하는 내 자신에게 현타가 와서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원하는 게 있다면 핑계를 대지 말고, 재능이 없는 자신을 직면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실행해야 했다.
이렇게 목적을 먼저 두고 당위성을 찾는 사고패턴은 인간의 본능일지 모르겠다. 다만 스스로 이런 사고방식을 택하기 쉽다는 것을 인지하면, 긍정적 에너지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선배 사업가는 이 방식을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어떤 기업에 투자하며 “될 것 같아서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투자했으니 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했다. 선택을 할 때, 정답은 없음을 알고, 과거에 근거해 어쩔 수 없다며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고, 내가 원하는 목적을 알고 그 목적에 합당한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하겠다.
아들러는 인간관계의 문제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놓고 있으며, 이상적인 인간관계 인식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인생은 남보다 더 높은 곳으로 경쟁하려는 의사가 아닐세.. 걸어온 거리와 걷는 속도는 다르지만 다 같이 평평한 길을 걷는 장면.. 자신의 발을 한 발 앞으로 내디디려는 의지를 말하는 거지.
건전한 열등감이란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라네
그는 남과 자신을 수직 선상에 놓지 말고, 수평 면에 놓아, 각자 위치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상태로 바라보라고 요구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에 신경 쓰면, 다른 위치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남은 비교가 불가하며, 열등감을 느낄 일도 우월감을 느낄 일도 없다는 것이다.
또 '과제 분리' 개념을 통해 타인에게 간섭하지 않고 그의 인생은 그의 몫으로 남겨두길 권한다.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네. 수평관계에 근거한 지원을 용기 부여라고 하지. 어떤 사람이 과제를 두고 망설이는 것은 그 사람에게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야. 능력이 있든 없든 과제에 맞설 용기를 잃은 것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네.
구속이란 불신이 바닥에 깔린 생각이기도 하지. 내게 불신감을 품은 상대와 한 공간에 있으면 자연스러운 상태로 있을 수 없겠지? 함께 사이좋게 살고 싶다면, 서로를 대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으면 안 되네.
이런 부분은 정말 자신의 소망을 자식에게 투여하는 많은 학부모들이 봐야 할 대목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타인을 자유롭게 두듯, 자신을 자유롭게 하라고 말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산다면, 모든 타인이 원하는 것이 다르기에 애초에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를 좇게 되며, 그 결과 타인의 인정 방식에 대한 불만과 스스로에 대한 거짓말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신 타인의 인정과 관계없이, 스스로의 소망에 집중하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할 때,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오히려 타인에게 감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 제목이 '미움받을 용기'라고 되어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아들러가 제안한 것은 '인정받지 않을 용기'였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사는 것은 어렵지 않네. 내 인생을 타인에게 맡기면 되니까. 불만을 느낄지언정 길을 헤맬일은 없지.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살면, 내 인생을 타인에게 맡기면, 자신에게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된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삶을 택할 것인가.
자신의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것' 그뿐이야. 그 선택에 타인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고.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 여기’에 집중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인생을 선형으로 보고, 출발점과 도착점을 정의한다면, 그 출발점부터 도착점 사이의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등산으로 치면, 정상 도착을 목표로 한다면 산길을 오르는 시간은 사실 수단에 불과하기에, 헬기로 정상에 오르면 목표가 달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아예 모든 시간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반면 산길에 오르는 시간을 목표로 하면, 출발점부터 도착점까지의 모든 시간을 사랑하게 된다. 아들러는 후자를 택하자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매 순간에 집중하고 음미하고 사랑해야 한다.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보는 것은, 원인론에 입각한 발상이자, 인생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낸다는 사고방식.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라네. 우의 삶이란 찰나 안에서만 존재한다네.
인생 전체에 흐릿한 빛을 비추면 과거와 미래가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 하지만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과거도 미래도 보이지 않게 되네.
아들러의 철학은, 내가 아무 이유 없이도 나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나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 믿게 하고, 현재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아이디어다. 철학이라는 것은 결국 사고방식이어서,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나는 내에 유용한 것만 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이토록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아들러의 철학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아들러의 철학을 담은 책이 대한민국 베스트셀러가 되어 기쁘다. 나와 같이, 인생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사고방식의 아이디어를 구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