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사랑하는 두 딸을 한 화면에 담아봤다. 그리다보니 '아차' 싶었다. 이쁜 두 딸을 나란히 그린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큰 딸이 이쁘면 작은 딸이 이상한 거 같고, 작은 딸이 이쁘게 그려진다 싶으면 큰 딸이 덜 이뻐 보였다. 균형을 잡으며 그리느라 거의 수 백 번은 고친 것 같다.
나에겐 세 자녀가 있다. 위로부터 딸딸 아들. 첫 아이 임신하고 이름을 생각하면서 다섯 이름을 지어 놨다. 아들 이름 셋, 딸 이름 둘. 딸도 형제, 아들도 형제는 있어야 서로 말벗도 되고 의지도 되겠다 싶어 적어도 넷 이상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머릿속 계산이었다. 연년생으로 두 딸을 나아 키우다보니 이건 현실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둘로 끝내자 하던 차에 셋째가 들어섰다. 셋째를 낳지 않으려 했는데 이상한 꿈 때문에 그냥 낳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세 자녀 엄마가 되었다. 아들을 형제로 나아주지 못한 게 아들한테 늘 미안하다. 남편이 남자 대 남자로 아들과 잘 놀아주면 좋을텐데 우리 남편은 놀 줄을 모른다. 다행히 큰 딸이 장남, 장녀, 남동생의 형 노릇까지 해주었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가끔 아들과 과격한 몸싸움도 해주었다. 남동생과 놀아준 것인지, 스스로 몸을 푼 것인지. ㅋ
나이가 들수록 딸들은 딸들끼리 서로 나누고 의지하는 것이 많아졌다. 물론 기본 성향은 많이 다르다. 큰 아이는 중성적, 둘째 아이는 천상 여자. 서로 다른 두 딸과 내가 합치면 우리는 여행하기 최적화된 팀이 된다. 스페인 포루투갈 20일 여행, 미서부 15이 일 여행이 이를 증명해주었다. 이건 완전히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무슨~ 우리가 엄마 데리고 다니느라 얼마나 힘든데.."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ㅎ 딸들이 어찌 생각하건 간에 나는 딸들과의 다음 여행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 두 딸은 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 중이다. 무엇보다도 긴 인내의 시간이다. 본인들이 원해서 하는 것이니 망정이지 내가 공부하라고 등떠밀었더라면 나는 가슴이 무거워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둘이 가까이서 비슷한 어려움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덕분에 아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독차지이다. 다 큰 아들이지만 누나들 눈치와 잔소리때문에 엄마한테 어린양 하지 못했던 것을 나이 상관없이 요즘 맘껏 하고 있다. 그래. 맘껏 하고 장가가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