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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Jul 26. 2022

Z세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제가 그렇게 밉습니까

금융 공기업.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조직. 수직적, 경직적. 7-80년대 기업 특징하면 떠오르는 어떠한 수식어를 붙여도 잘 어울린다. 금융권 특유의 단합과 정갈한 복장을 고집하는 곳. 수평적, 유연한 문화를 지향하던 나의 첫 직장.


1년 신입 직원은 30명이 채 되지 않고 전 직원은 4백 명 남짓이다. 평균 근속기간은 2-30년으로 정년까지 근무하는 직원들은 빠른 입소문을 두려워해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입사하고 알았다. 내게는 병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근질거리는 말들을 말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병. 입 밖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타자를 치며 머릿속으로 입씨름을 하는 병. 대리, 과장의 눈초리 속에 기어이 터뜨려서 느슨한 사무실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야만 하는 병.

봄 중순. 사무실 창가로 비치는 햇볕이 따갑다. 김계장이 에어컨을 틀어보니 몇 번 돌아가다 푹 꺼져버린다. "설마요." 하던 일을 미루고 에어컨 업체에 전화했다. 업체에서는 빨리 하려면 주말이고, 평일은 오래 기다려야 한단다.


할 수 없이 누군가는 주말에 나와 사무실 문을 열어야 했다. 우리 부서에는 갓 태어난 지 1-2 년 된 아기가 있는 직원이 둘, 다섯 살 아들이 있는 직원이 하나 있다.

1인 가구에 회사에서 15분 거리에 사는 내가 나오겠다고 자진했다. 서울숲 피크닉을 포기한 나는 박수갈채를 기다렸다. 차장이 말한다. "여자 혼자? 아저씨 둘이 오는데 위험한 거 아니니?” 나는 하도 기가 차서 “네!!!!?????” 옆에 계신 지점장님 민망하게시리 큰 목소리였다.

여자라서 주말에 혼자 근무도 못한다는 말이야? 저게 바로 가해자의 언어 아닌가? 에어컨 수리 기사님들이 가정에 성실한 사람들일 수도 있잖아. 남성이라고 가해자로 만드는 거야? 본인도 남자면서? 신용정보조회를 하며 무수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꽂혔다.


“차장님. 방금 무슨 의미세요? 전 좀 민망한데요."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아니, 난…” 차장님이 답하지 못하자 모니터에 김계장이 보낸 채팅 알람이 떴다. “대단해, 하여튼.”

본부장님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한다. “본부장은 통신요금 회사에서 내준다네. 법인으로 납부계좌 변경 좀 해줘.” 부자들은 돈 쓸데가 없다더니…부러움도 잠시, ‘내가 왜!’라는 생각이 스쳤다.


통신사에 알아보니 신청자가 본인이 아니라서 번거로운 서류가 더 필요했다. SKT고객센터 연결 한 번에 10분은 소요됐고, 본부장님 신분증 스캔, 그리고 또 동의서 스캔. 정작 그는 손하나 까딱 안 하고 매달 5만 원을 아낄텐데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다.


“변경했는데요. 대신하느라 절차가 더 복잡했네요.” “아하하.. 그러니?” 그가 머쓱하게 웃는다.

원격근무

코로나19 입사하고  달이 지나서야  회식을 했다. “저녁 회식 싫었는데 다미가 점심 회식하자고 해서  좋았어.”, “저녁 회식 싫냐는 질문에 좋지는 않다고 답하는  처음봤어.”하며 나보고  조직이랑 결이 다른 사람인  같단다. 나는  칭찬 너무 땡큐라고 했다. 조직에 물들어 내가 변하지 않길 생각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차이점에 대해 글을 본 기억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내면의 저항적 시선을 가지면서도 조직에 적응하는 반면, Z세대는 복종하지 않을 뿐이라고.

꾹 참고 넘어가는 게 평화롭다는 건 나도 안다. 그들이 날 보며 놀라듯, 나는 잘 참는 그들이 놀랍다. 어떻게 참는 걸까 그 입밖으로 비집고 튀어나오는 언어들을.


참고 참고 참고 참으면서 가끔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김계장이 시원하게 뱉어냈으면 좋겠다. 젊은 직원에게 고나리질 그만하시라고. 저마다 제 삶에 진심이라고. 집은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사는 거라고. 안 그래도 우리는 저마다 꿈 하나씩 품고 있다고. 취미 가지라고 하실 필요 없다고. 이미 취미가 하도 넘쳐서 바쁘다고. 버튼 눌릴 때마다 터뜨립시다. 빠앙-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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