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일까. 제주를 떠나 5년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이 도시에는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나의 부모까지 생활권에 없었으니까. 나의 부모는 내가 끓인 차돌박이 된장찌개에 놀랐다.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동창의 부름에 나시에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 드러난 맨살에 철썩 달라붙는 시선들. "어우, 나 깜짝 놀랐다.", "뭐? 나 원래 이러고 다니잖아.", "참나, 니가 무슨 나시를 입고 다녔다고?" 뭐..! 뭔 소리야! 생판 나를 모르는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나를 보며 수술은 안 한 것 같은데 뭔가 달라졌단다. 스물셋쯤 어느 날 갑자기 쌍꺼풀이 생겼다고 말했다. 영화 뷰티인사이드에서 이동욱이 박서준이 되고, 박서준이 천우희가 되는 것처럼. 아침에 눈비비고 거울을 봤는데 그냥 그랬다고 했다.
친구는 그게 말이되냐고, 내가 아는 최다미는 이런 찐한 쌍커풀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부연했다. 사각턱 보톡스 맞을 때 생긴 건지 뭔지 잘 모르겠다고. 가족들은 원래 나 빼고 진한 쌍꺼풀이 있다고, 서장훈도 40살에 쌍꺼풀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친구가 묻는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작가를 하는 거냐고. 데이트하다가 노들섬에서 네 글을 본 적이 있다고. 만나던 그 사람은 계속 만나냐고 한다.
내가 답했다. 아니라고. 나는 지금 금융 업계에 있다고. 그런데 네가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냐고 되물었다.
'도시남녀의 사랑법 '에서 지창욱은 1년 전 양양에서 만나 사랑한 김지원(윤선아)을 찾아다닌다. 서핑하고 털털하고 매력 있는 윤선아. 그녀의 실제 이름은 이은오다.
털털하지도 않고 캠핑카도 내 것이 아니었다며 김지원은 지창욱을 피해 다닌다. 지창욱은 마침내 김지원을 찾아 말한다. "그것도 너고, 지금의 초라하다고 여기는 네 모습도 너야. 윤선아도 이은오도 전부다 너라고!" 고백인지 뭔지 대단한 깨달음을 주는 지창욱의 말에 김지원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앞으로도 삶은 오해될 것이어서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은유 작가가 말했고, 누군가 완벽하게 나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알랭 드 보통이 말했다.
멋진 미래 안경이 발명돼서 스캔 한 번으로 내가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안경이라면 나는 내가 싫어하는 MBTI대화를 할 필요가 없을 거고, 나를 증명해보려 시도하는 인스타그램도 자연스레 끊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