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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Mar 17. 2020

영 고라믄 호끔은 알아 들음수깡?

(제주 사투리)

 ‘무사’는 제주 사투리로 ‘왜’라는 뜻이다. ‘왜’라는 단어가 그렇듯 제주말에서 ‘무사’도 다양하게 쓰인다. “무사 이제완?", "무사 전화핸?"처럼. '왜'를 '왜'라고 하면 되지 왜! 굳이 '무사'라고 말하냐고 묻는다면 답할 길이 없다. 사투리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사투리는 지역 고유의 '말'이다. 나는 제주에서 완전히 새로운 ‘말’을 배웠다.

 처음 제주말을 접했을 때는 신기했다. 정확하게는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신기했다. 내가 "밥 먹었어?"라고 물으면 그들은 "밥 먹언"으로 답했다. 제주 아이들끼리는 대화에 사투리가 들린다. "너 서귀포 아이~?(말 끝을 늘려야 한다.)"하고 물으면 "응. 나 서귀포 살맨." 한다.


 제주말은 북한말 같기도 하다. 말을 짧게 줄인다. 대표적으로 '야이( 아이)', '가이( 아이)', '쟈이( 아이)', '(이렇게)', '(그렇게)'이 그렇다. 자주 쓰이는 말로 모르면 대화를 놓친다.


 사투리를 잘 모를 때 겪었던 일이다. 친구가 말했다. "우리 과에 혁이 알지? 가이(그 아이) 여자 친구랑 또 헤어졌댄. 가이(그 아이)는 매번 왜 그러는지 모르크라." 나는 혁이가 헤어졌다는 말보다 갑자기 튀어나온 '가이'가 누군지 궁금했다. "가희가 누군데?"하고 묻자 친구는 "혁이!'라고 답했다.

 줄여 쓰는 말은 짐작이라도 한다. 제주말에는 짐작도 못 할 새로운 단어가 많다. '호끔', '하영', '고라다', '자락'이 그렇다. '호끔' '조금', '하영' '많이', '고라다' '말하다', '자락' '정도'다. 제주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놀랍게도 분명 한국말이 맞다.

 좋아하는 제주 사투리도 있다. '' '수깡' 붙는 말이다. 동네 구멍가게 할멍에게 주워 들은 말이다. 덜그럭 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티브이를 보던 할멍이 고개를 내민다. "누게꽝~?" 그녀는 나를 보고는 다시 티브이로 고개를 휙 돌린다. 누게꽝이 아닌 날도 있다. 할멍은 누가 오는 시간인지 "와수깡~?"한다. 참 정감 있는 말이다.


 재미있는 제주말도 있다. '메께랑!'이다. 메께랑은 "깜짝이야!"라는 뜻이다. "메께랑!"에서 뒤집어지게 놀라 소쿠리가 뒤로 던져질 것만 같은 '놀라 자빠짐'이 들린다. 나는 '메께랑'을 이길만한 사투리는 대한민국에 없다고 자부한다. '메께랑'은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쓰인다. 나이 어린 아이들이나 청년, 부모 세대는 쓰지 않는다. 슬프지만 사라져 가는 제주말이다. 나는 "아-메께랑- 대체 왜 그러냐?" 하며 그저 장난스럽게 말하는 제주 친구에게 배웠다. 메께랑이 글자로만 남지 않았으면 한다.


 사투리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기도 했다. 한국인 사이에 말이 안 통해서 일을 그만뒀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다. 제주에 온 지 한 달째. 내가 사투리를 잘 모르던 시절 벌어진 일이다.


 개인 치킨집에 직원은 두 명이었다. 사장님과 알바생인 나. 사장님은 주방에서 치킨을 굽고 나는 혼자 홀서빙을 했다. 조리부터 서빙까지 원활하게 이어지려면 주방과 홀의 합이 중요했다. 그러나 우리가 맞지 않는 다는 사실은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바로 '제주 사투리'때문이었다.

 사장님 말에는 90% 제주 사투리가 박혔다. 나는 사투리를 걸러낼 시간이 필요했다. “8번 테이블 오븐치킨 나간?” (잠시 정적) “네. 나갔어요.” “소스 하나 더 필요하맨?” (또 다시 정적) “아뇨. 두 개요!” 대답에서 느껴지는 망설임은 바쁜 와중 서로를 멈추게 했다. 더 문제는 짧은 말이었다. “핸?” “만들언?” “간?”하면 나는 순간적으로 “네?”하고 되물었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사장님의 낱말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답답한 건 사장님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주방과 홀 사이 네모난 창 사이에 멈췄다. 밀린 주문서와 튀김기는 사장님을 재촉했고, 콜라나 치킨무를 추가로 서빙해야 하는 내 두 다리는 떠나질 못했다. 결국 사장님은 울화통이 터졌다. 사장님은 “말 못 알아 들음시냐? 소스 만들었냐고!” (그 와중에도 사투리를 썼다.) 사장님이 짜증을 내면 내 대답에도 짜증이 나왔다. 우리는 잘 맞는 파트너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치킨집을 단 10일 만에 그만뒀다.


 제주에서 지내다 보니 자주 쓰는 사투리의 의미를 확실히 파악했다. '무사'는 '왜'며 '고라다'는 '말하다'는 의미. 야이, 가이, 쟈이도 안다. 나는 "What time is it now?"를 처음 배운 사람처럼 제주 말을 써먹었다. "준석아. 밥먹젠?" 하니 준석이 답한다. "밥 먹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밥 먹었냐고." 준석이 웃으며 설명한다. "누나. 그럴 땐 밥 먹언?이라고 하는 거야. 밥 먹젠은 같이 먹자는 거야. 누나. 나 뭐랜 골암신지 좀 알아 지크라?"


 왁! 사투리가 날 잡아먹으려는 게 분명하다. 아직도 모르는 게 있다니. 나는 문법을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주 말은 막무가내로 쓰이지 않는다. 제주 사람들은 사투리로 과거형, 청유형, 본인을 포함하는지, 제외하는지 표현한다. 흔히 우리가 아는 "밥먹언?"과 "밥먹젠?"은 다른 의미다. "밥 먹언?"은 "너 밥 먹었니?"는 의미다. 말하는 이를 제외하며 과거를 묻는 말이다. "밥먹젠?"은 "너 나랑 밥 먹자."는 의미다. 말하는 이를 포함하며 제안하는 의미다. 사실 '젠'도 어감에 따라 제안하는 말과 본인의 의지를 표하는 말로 나뉜다. 독자도 이제 제주 사투리에 진절머리가 났을 테니 제주말은 이쯤으로 그만하자.


 제주 사투리는 오해가 있다. 먼저 '억양이 없다.'는 오해다. 전라도나 경상도처럼 강하지 않을 뿐 모든 제주말은 억양이 존재한다. 제주 사람들은 육지 사람이 어설프게 따라 하는 말을 바로 구분한다. 다른 지역이 그렇듯 사투리의 리듬이 핵심이다. “그자락~?”은 “그 정도야?”는 의미다. ‘그 자락’이냐고 물을 때 말 끝을 꼭 쭈욱- 늘려야 한다. 대답할 때는 단호하게 "응! 그자락.”이라 마침표를 딱 찍어 답한다.


  '제주 사람들은 사투리를 잘 쓰지 않는다.'는 오해도 있다. 제주 사람들은 "아, 제주도분이세요? 사투리를 안 쓰시네요?"의 반응을 자주 듣는다. 제주 사투리는 존댓말에 사투리가 없다. "차 타고 가젠?"은 존댓말 앞에서 사투리 없이 "차 타고 가실래요?"로 바뀐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차 타젠?"이라 할 수는 없다.

*젊은 사람들에 한해서 그렇다. 줍서, 누게꽝, 왐수깡 등 어르신이 쓰는 말은 존댓말에도 사투리가 있다.


 제주 사투리 하면 ‘혼저옵서예’가 떠오른다. 그러나 제주인 입장에서 그 말은 조롱하거나 비하한다고 받아들인다. 실제로 혼저옵서예는 나이가 팔십먹은 할멍도 잘 쓰지 않는다. 잘 쓰지도 않는 말을 ‘제주도’라는 이유로 들먹이니 당황스럽다. 제주 친구에게 “메께랑!” 정도로 써주면 어떻게 알았냐며 놀랄 것이다.

 어릴 적 TV 프로그램에 전국 사투리 의미를 맞추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중 제주도 사투리는 항상 최고 난이도로 뽑혀 출연자 사이에서 진득한 토론이 오갔다. 그러다 "이 말이 실제로 쓰인다고?", "말도 안 돼." 하며 혼돈의 카오스가 벌어졌다. 공개된 정답에는 별 특별한 의미가 없는 뜻이 밝혀진다. 출연자는 "아니! 진짜? 왜 저렇게 말해?" 하며 폭소와 경악의 제스처가 오갔다. 나는 극악의 난이도인 제주 사투리를 타파했다. 이 정도면 전국 사투리 무서울 것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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