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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가모모씨 Jul 01. 2024

아픔을 오롯이 견뎌내는 일

교정인은 오늘도 아프다

나는 결정을 내리는 건 느린데, 한 번 결정을 내리면 행동은 빠릿한 편이다.

교정도 그랬다. 5년 넘게 계속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에는 병원 한 군데만 상담을 받고 바로 교정에 들어갔다.

그래서 나이가 찬 교정인이 된 지 만 2년 째다.


타인이 볼 때는 내가 그다지 변화가 없겠지만, 내가 볼 때는 그래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완성이 되려면 아직 한참은 더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꽤 만족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조금이라도 변화하려면 찌릿한 아픔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견뎌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 치아를 꼭 조이고 나면 일주일은 삼시세끼 먹을 때마다 찌릿한 고통을 참아야 한다.

쌀 한 톨 씹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때도 있고, 이 즈음에 약속을 잡았다면 나 때문에 식사 메뉴가 한정되는 폐를 끼치기도 한다.

그런데 일주일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맛있게 음식을 먹는다.

그렇게 한 달을 버텨내면 내 입은 전보다 보기 좋게 변화한다.


그러고 보면 뒤늦게 교정을 하게 된 것은 나에겐 잘된 일이다.

조금 더 일찍 교정을 했으면 이 아픔에 오롯이 맞서며 의사 선생님을 붙들고 왜 이렇게 아픈지, 진행은 왜 이렇게 더딘지 따져대거나

가족들을 붙들고 온갖 짜증을 부렸을지도, 혹은 하루종일 거울을 들고 입만 쳐다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견디면 어떻게든 흘러갈 것이고, 언젠가는 끝날 것이란 걸 안다.

나중에라도 잘못 흘러가면 또 좋은 방향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그러니 나에게도, 내 주변인에게도. 나의 뒤늦은 결정이 얼마나 해피하고, 잘 된 일인가?


그러고 보면 당시에는 아프지만 지나고 보면 예쁜 것들이 있다.

사회 초년생일 때 매일매일 어설픈 스스로를 탓하며 울었던 일은 9년 간 회사생활을 하는데 참을성을 길러주었다.

사람들과의 부딪힘은 당시에는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지만, 덕분에 나는 반성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뒤늦게 맞이한 질풍노도의 시기에 부모님과 나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싸워댔지만 덕분이 지금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엉망이었던 자취생활 덕분에 좀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됐고, 내 취향도 알 수 있게 됐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오면서 스스로를 비난하던 때도 있었지만, 결국 그 시간 덕에 나는 조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다가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았다면 지금은 파도를 조금은 탈 수 있게 됐다. 아마 내년에는, 그 후에는 더 파도를 잘 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찌릿한 아픔이 오면 조금 덜 아프게 견뎌내면 된다.

치아를 조여낸 후에 음식을 먹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면을 잘게 잘라먹거나 좋아하는 맛의 죽과 빵을 먹으며 견뎌내듯이,

인생에도 힘든 일이 온다면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아픔 속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따로 가지면 된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잘 견뎌낸다면 아픔이 나를 예쁘게 변화시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아픔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멋있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주기적으로 오는 아픔을 내 것으로 오롯이 잘 받아내는 사람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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