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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Aug 25. 2020

나 자신에게 경계경보 발령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책 읽는 시간보다 웹서핑을 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나의 그런 경향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부터 심해졌다. 스마트폰은 웹에 접근하는 것을 훨씬 수월하게 만들었다. 웹서핑을 할 때면 늘 서로 다른 짧은 생각들이 연속된다. 그런 생활로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습관'을 얻었다. 뉴스 기사는 대강 훑어본다. 어차피 읽을 기삿거리는 넘쳐나니 자세히 읽지도 않고, 읽은 후 생각이란 것도 하지 않는다. 곧 흥미로운 다른 기사로 금방 넘어갈 거니까. 기사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 그렇다. 칼럼도, 영화도, 책도. 단편적인 생각들이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튀어다니는 웹서핑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빠르게 넘기고 짧게 생각하는 행위는 다소 끔찍한 버릇을 만들어냈다. 늘 경계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관대해지는 것. 이를테면 편견, 집단주의적 사고, 확증편향, 이분법적 사고 같은 것이다. 그런 것들은 판단에 들이는 수고를 줄여준다. '이것이 흑색이면 저것은 백색이다'. 다른 무수한 색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는 편이 훨씬 편하다. 깊이 생각하면 피곤하니까 쉬운 길을 선택한다. 편견을 갖는 게 쉽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게 쉽고,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게 쉽고, 여러 개인보다 하나의 집단 논리에 편승하는 게 더 쉽다. 그 안에서 희생당하는 개인이 있든 말든.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손쉽고도 자극적이며 강렬한 방법이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반으로 나누는 일에는 모종의 쾌감이 동반된다. 누군가를 '규정'하거나 '낙인찍는' 순간 우리에게는 어떤 인식의 쾌락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스스로가 어떤 '통찰력'을 가졌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통찰력이란 일종의 힘이다. 타인을 규정할 수 있는 힘, 누군가를 꿰뚫어보았다는 자부심, 나아가 아군과 적군을 나누어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이 일에 동반된다. 이런 쾌락이 이제 우리 사회 전체를 돌아다니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본문 중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편견, 집단주의적 사고, 확증편향, 이분법적 사고 따위에 사로잡힌 사람에게서 과연 가치있는 글이 만들어질까 모르겠다. 오랜만에 집어든 책, 한국 사회 속의 인간성을 다룬 책을 읽고 나는 스스로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단상에 사로잡히지 말 것. 혐오주의에 선동 당하지 말 것. 단상에 사로잡히면 쉽고 빠른 판단으로 남을 쉽게 혐오하고, 같은 논리로 혐오당할 것이다. 깊숙히 들여다보면 이해받지 못할 인간은 잘 없다. 스쳐지나갈 뿐인 수많은 짧은 생각들이 얼마나 다양한 인간 면모들을 죽여가고 있는가.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컴퓨터자수 디자이너, 번역가, 영어강사 등의 직업을 체험한 뒤,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음악가를 꿈꾸었지만 음악은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고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국어 배우기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헬로. 곤니치와. 올라. 잡다하게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소설을 쓰게 되리라곤 미처 예상못했다. 어쩌면 호기심이 집필의 원동력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2018년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장편소설 《게토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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