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미준 May 04. 2019

그들은 왜 마약을 할까?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연예인들의 마약 관련 기사가 연일 포털사이트를 도배하고 있을 때, 무슨 책을 읽을까 둘러보던 중 단번에 눈에 띈 책이 있었다. 책 제목이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정말, 나는 마약을 모른다. 뉴스 기사에 실리는 마약사범들은 대부분 부자이거나 성공한 연예인들이었다. 마약은 해로우니 나라에서는 금지하고 있는데, 그들은 왜 마약을 하는 걸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마약이 사실은 좋은 건데 가진 자들끼리만 즐기려고 서민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해로우니 하지 말라'고 국가가 나서서 뻥을 치는 거 아닐까. 성공한 사람들이 왜 해로운 마약을 하겠는가? 비싼 돈을 주고 몸에 좋은 음식을 일부러 사먹는데 굳이 마약을? 마약이 해롭다고 세뇌당한 서민만 바보인 걸까?


명약과 독약의 차이는 단지 복용 비율에 의존한다.
- 히포크라테스 -


마약이 뭔데?


마약의 ‘마’ 자는 마귀를 뜻하는 게 아니다. 삼, 즉 삼베옷을 만들 때 사용하는 식물인 대마를 뜻한다. (그렇다고 대마 성분이 들어간 약만 마약이라 부르는 것도 아니다. 통칭이 마약일 뿐.) 우리는 이미 마약을 사용하고 있으며, 병원에서 흔히 마약성 물질을 경험하고 있다.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온갖 종류의 마약이 ‘명약’이 되어 의료용으로 쓰이고 있는데, 뇌전증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약재인 대마만 금지되고 있다. 여기에는 박정희 정권이 한몫 했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대마초가 불법이 아닌 시절이 있었다. 록과 포크 음악 가수들이 정권을 비판하고 저항의 위치에 서자, 이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대마초 흡연이라는 죄목을 씌워서 말이다.


마리화나(대마)의 정식 영어명칭은 카나비스(cannabis)다.


대마초는 나쁜 것?


흡연자들 사이에서 가끔 대마초에 대한 토론이 오고 간다. 연예인들이 대마초 때문에 구속되는 일을 자꾸 접하다 보니 도대체 대마초가 뭐길래 저렇게 처벌을 무릅쓰고 피워대는건지 궁금해진다.


대마초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의견으로 갈리는 듯하다. ‘대마초는 하드드럭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vs ‘담배와 술보다도 덜 해롭고 중독성도 없다’. 네덜란드에서는 대마초와 같은 소프트드럭을 합법화…는 아니고 ‘비범죄화’ 했다고 한다. 하드드럭의 폐해를 막기 위해 소프트드럭을 허용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전체 마약 사용량이 줄어들었다. 네덜란드가 주목한 것은 마약 사용자를 범죄자로 취급해 삶에 찾아올 수많은 기회를 빼앗고 그들을 더욱 비참한 궁지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도와줌으로써 마약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마보다 해로운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사용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한다. 치아가 망가질 정도로 데미지가 크기 때문에 차라리 대마초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영국의 의학저널에서 발표한 마약 유해성 등급표 (2007). 지금은 마약의 종류가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


마약은 대개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불법이니 값이 비싸고, 돈이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거라 생각했다. (즐기는 건지, 사로잡힌 건지.)


마약의 역사가 꽤 길다. 고대인들은 양귀비를 신에게 바치기도 했고, 중세유럽에서는 종교의식에서 황홀경에 이르도록 돕는 약물을 사용했으며, 산업혁명 시절에는 고된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이 아편을 사용했다. 영국의 유명 방송사가 직원들에게 마약 사용을 권장했다는 설도 있다.


우리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금단현상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부정적인 주변 환경이 우리가 금단현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만들 뿐이다.
- 알렉산더 박사 -


힘든 환경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삶의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워 탈출구로 마약을 사용하며, 환경이 쉽게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 마약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중독된다고 한다. 한쪽에는 부자들이, 다른 한쪽에는 빈자들이, 각각 마약 사용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힘든 노동 후 소주 한 잔으로 피로를 풀듯, 그들에게는 마약이 그런 역할을 한다. 마약 사용자가 모두 마약에 중독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좋아지면 중독자 수도 줄어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쥐 실험도 있다. 중독의 원인으로는 복잡한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이 실험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하다.


서민들에게는 소주라는 마약이 있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요즘 뉴스에서는 마약 관련소식이 하루도 빠짐없이 전해진다. 연예인 누구의 필로폰 투약, 물뽕(GHB)을 이용한 강간 등. 하지만 나 같은 보통사람은 그런 마약이 있다는 것만 알지, 마약의 종류도, 각각의 특징도, 중독성의 정도도, 폐해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의 저자는 가볍고 가독성 좋은 필체로 마약의 역사부터 종류, 신체에 끼치는 영향, 마약 규제 사례 등을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마약을 하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땐 주변의 모든 것이 신기하듯, 책 속의 마약 세계가 그렇게 느껴졌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어내려갔다. 마약에 대한 웬만한 궁금증은 다 해소된 것 같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이 왜 마약을 하느냐! 그만큼 그들이 사는 세계 역시 고단하고 불만족스럽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컴퓨터자수 디자이너, 번역가, 영어강사 등의 직업을 체험한 뒤,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음악가를 꿈꾸었지만 음악은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고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국어 배우기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헬로. 곤니치와. 올라. 잡다하게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소설을 쓰게 되리라곤 미처 예상못했다. 어쩌면 호기심이 집필의 원동력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2018년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장편소설 《게토의 주인》.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는 원래 어렵고 느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