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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May 01. 2019

글쓰기는 원래 어렵고 느리다

<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작가는 글을 써서 살아간다. 글이 무기인 작가가 글쓰기를 어려워한다면 어떨까. 신인작가인 나에게 글쓰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쓸 것이 떠오르지 않고, 집중이 안 되고, 느려서 조바심이 난다. 나는 과연 작가가 될 만한 사람일까를 매일 매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최고의 작가들이 이렇게 말했다.


나도 글쓰기가 어려워.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유명한 소설가도 하루종일 앉아서 글을 쓰지 못한다. 하루에 2~3시간씩 글을 써서 몇 년에 걸쳐 초고를 완성하는 작가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하루에 쓴 작품의 글자수가 500자도 채 안 되었다. 물론 8~9시간 동안 글을 쓰는 작가도 분명히 있지만,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들 중 다수의 하루 중 글쓰기 시간이 짧은 것을 보면, 그들에게도 글쓰기가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내가 글쓰기를 어렵게 여기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이디어가 없어서, 정보가 부족해서, 인물이나 배경 등 설정이 부족해서, 문장력이 부족해서 등등 여러 가지를 떠올렸다. 정답은 뭘까. 전부 다 문제인 걸까.



정답이 없다


작가들의 집필 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미즈 앙 플라스’라는 말이 있다. 요리에 바로 쓸 수 있도록 재료를 모두 준비해놓는 것을 칭하는 용어다. 미즈 앙 플라스 스타일의 작가도 있다. 모든 재료를 미리 준비해놓으면, 초고는 그 재료들을 배치하는 작업이 된다.


나는 미즈 앙 플라스 스타일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스타일을 찾기 못했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려운 걸까? 아니다. 미즈 앙 플라스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쉬운 방식도 아니다. 작가들 중에는 자기 자신도 결말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의식의 흐름’대로, 혹은 캐릭터의 성격대로 자연스럽게 서사가 흘러가는 방식도 있다.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고 끝내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마치 오늘 산 주식이 내일 대박을 터뜨리기를 바라는 마음과 비슷한 것이다. 글에는 많은 생각이 담겨 있다. 좋은 글에는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고찰의 과정을 생략하고 끝내기부터 하려 한다. 고찰 없이 끝에 다다르려 하니 글이 안 나올 수밖에. 한 번에 끝내려는 조바심 때문에 지치고 결국 포기하게 된다. 애초에 글쓰기란 느린 작업이라는 걸 잊은 것이다. 빠른 속도로 초고를 완성했다고 해도, 초고가 최종 결과물로 변모하려면 고찰의 시간, 숙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포기하고 만다.



축적의 시간


나 또한 속도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수많은 작가들처럼 어린 나이부터 글쓰기를 해온 사람이 아니다. 늦은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한 만큼 빠르게, 많이 써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조바심과 압박감을 느낄수록 '내가 과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쉽게 지쳐버렸다. 스스로 재능이 없고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다. 장편소설 한 편을 2년 동안 붙들고 있고, 단편소설 한 편을 한 달 안에 완성하지 못하는 자신을 타박하고 괴롭혔다. 책상 앞에 앉아도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루이즈 디살보의 <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를 읽게 되었고, 책에 언급된 작가들은 나에게 글쓰기의 비밀을 가르쳐주었다.


글쓰기는 원래 느리다.


글은 어느 순간 터지는 불꽃 같은 것이 아니다. 평소에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경험, 생각 등을 꾸준히 메모하면 그것들이 소재창고에 쌓인다. 작품은 그 안에서 찾은 재료들로 완성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고 느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 데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징징대던 나는 <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의 저자에게 야단을 맞고 말았다. 정답은 없지만 단 하나의 조언이 있다면 이것이다.


‘느리게 가라.’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컴퓨터자수 디자이너, 번역가, 영어강사 등의 직업을 체험한 뒤,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음악가를 꿈꾸었지만 음악은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고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국어 배우기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헬로. 곤니치와. 올라. 잡다하게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소설을 쓰게 되리라곤 미처 예상못했다. 어쩌면 호기심이 집필의 원동력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2018년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장편소설 《게토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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