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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Oct 22. 2020

집 나간 인간성을 찾습니다

인터넷 재약정 계약을 했더니 신세계 상품권이 생겼다. 바코드가 찍힌 모바일 상품권을 이미지 파일로 받았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기로 하고, 집 근처 이마트로 향했다. 매장 고객센터에 키오스크(무인발급기)가 있었다. 버튼 몇 개 터치하고 바코드를 갖다 대면 순식간에 기계가 종이상품권을 토해낸다. 권종도 10만 원권, 5만 원권, 1만 원권, 5천 원권으로 다양하다. 새 지폐처럼 빳빳한 상품권을 들고 두 달 치 식량을 샀다.

몇 년 전 롯데리아에 햄버거를 사 먹으러 갔었는데 어느 날 낯선 기계가 매장 한편에 떡하니 서 있어서 문화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키오스크는 주민센터 같은 곳에서나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인점포가 과연 가능한지, 아마존 같은 대기업들이 실험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매장에서 사람을 통하지 않고 주문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롯데리아에서 키오스크를 만나고부터는 체감의 정도가 사뭇 달라졌다. 사람이 사라지는 영업장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서울 도심의 핫한 중심가에 살다가 변두리 지역으로 나와서 지금은 재래시장을 품은 동네에 살고 있다. 이곳은 서울만큼 붐비지도 않고, 상점이나 식당, 점포들도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아직 무인기기랄지, 그런 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동네 롯데리아에서도 직원이 직접 주문을 받는다. 아, 얼마 전 의왕역 앞 맘스터치에 키오스크가 한 대 들어왔다. 그게 우리 동네 무인기기의 시작이지 싶다.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길 게 걱정이라지만, 지금까지도 사라진 직업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직업이 새로 생겨났다.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줄어든 만큼 기계가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될 텐데 일자리 없어진다고 별로 걱정되지는 않는다. 지금도 인구가 너무 많다. 전 세계 인구는 정신 나갈 정도로 많다. 인간은 원래 게으른가, 하고 가끔 생각해본다. 일을 한다는 건 인간의 본성과 어떻게 대치되나?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있다면 그건 일이 아니고서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일중독자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인간은 일을 한다. 열심히. 혹은 억지로. 나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가 많다. 인간의 본능대로라면 일을 하는 게 맞을까, 안 하는 게 맞을까?

어렵고 힘든 일을 기계가 대신해주는 건 좋은 거라 생각한다. 인간의 가치가 좀 더 올라갈 테니까. 한국인들을 보면 머릿속에 오로지 돈밖에 없는 것 같다. 타인은 돈을 벌기 위한 도구 혹은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집 나간 인간성이 돌아오려면 기계적인 일을 기계에게 넘겨주고, 인간이 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일을 인간이 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돌아올까 말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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