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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Mar 10. 2021

우리집 개를 늑대로 만들 셈인가!

반려견과 반려도마뱀의 운명

한국에서 인간을 제외한 최상위 포식자는 누구일까?


우리가 '맹수'라 칭하는 공포스러운 포식자들은 한국에선 멧돼지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늑대는 멸종되었고, 표범과 호랑이, 곰 등은 멸종의 기로에 서 있거나 멸종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대형 맹수가 사라진 땅에서 멧돼지와 담비, 삵 등은 일진 되었다. 예전에 담비의 사냥 장면을 찍은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았는데, 거기에서는 노란목도리담비를 '멧돼지도 잡아먹는 최상위 포식자'로 소개하고 있었다. 겨우 담비와 삵 정도가 멸종 위기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먹이사슬 최상위를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이때, 새로운 종류의 포식자가 야생에 등장했다. 들개가 바로 그들이다.



군산 새만금에는 버려진 개들이 무리 지어 들판과 거리를 활보하며 먹이를 사냥하고 있다. 군산 경제가 악화하며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개들만 남다. 거기에 외지까지 손수 찾아온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개들도 입주했다. 얼마 전 새만금에 갔을 때 문득 그 사실이 떠올랐다. 굳이 눈여겨보지 않아도 새만금 방조제 주변, 인도에 잔뜩 풀이 자라 있는 썰렁한 공단 지구를 무리 지어 어슬렁거리는 개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밤에 공단 인근 거리를 걷는데, 500미터쯤 되는 도보길에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이고 진돗개만 한 개들만이 배회하고 있었다. 개들은 우리와 눈싸움을 하다가 우리가 가까워지자 다른 곳으로 피해버렸다. 어떤 개의 목에는 사육의 흔적인 목줄이 감겨 있었다.


비단 새만금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집에서 길러지던 개가 홀로 야생에 버려지면 퍽이나 쉽게 적응하살아남다. 그런데 그렇게 인간의 손을 떠난 개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애초에 버려진 개가 한두 마리가 아니었던 거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스레 무리를 이루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는 편이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이다. 새만금에서만 개들이 무리 지을 만큼 많이 버려졌으니, 이런 데가 어디 한두 곳이겠는가. 전국 각지에 랜드마크처럼 하나씩은 있을 터.


야생에서 들개가 맹수 노릇을 한다는 건 얼핏 고라니의 정력적인 번식을 막아줄 반가운 소식일지 모른다. 기울어졌던 먹이사슬의 균형을 되찾아 줄 어벤저스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들개 대다수의 태생이 집개라는 사실이다.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가공되고 훈련되고 인간처럼 살기를 강요받다가 야생에 버려진 집개는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일부가 아니라 그 또한 인위적으로 던져진 조절자에 불과하다.



대자연의 주인은 누구인가.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보다 자연을 정복해 주인이 되려는 바벨탑의 길을 택했다. 자연을 마음대로 가공해 인간만의 구역을 만들었고, 그 구역 안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들은 마치 원래 지구에 살지 않았던 이방의 존재인 양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 동류 집단의 구역 게토, 변방의 약자들이 모인 그곳에서 결국 진정한 주인이 되는 자 인간일까, 동물일까. 아니면 그 모두를 포함하는 자연일까.

-소설 《게토의 주인》 에필로그에서-



희귀동물의 운명도 불 보듯 뻔하다


유튜브에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자주 봐와서 그런지 국내에서 희귀동물을 키우는 유튜버들의 영상이 가끔 추천되어 뜬다. 거북이, 도마뱀, 외우지도 못할 생소한 이름을 가진 희한한 동물들을 키우거나 판매하는 사람들의 채널이다. 나도 처음에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영상을 시청했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보기가 불편해졌다. 과연 사람들이 저 동물들을 매입해서 끝까지 키울까? 생물 특성에 맞는 환경을 최대한 반영해줄 수 있을까? 저수지에 버려진 외래종 물고기처럼, 간척지에 버려진 개들처럼 그 신기한 동물들도 언젠가는 주인이 감당하기를 포기할 때 들개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다. 신기한 눈요깃거리,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희귀 상품 정도로 여기며 동물을 소유하다가, '금덩어리가 아니었네' 깨닫고 동물에 대한 애정(혹은 가치)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순간, 번거로움을 느낀 인간이 과연 그 동물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희귀동물 분양'을 검색하면 다양한 동물 섬네일이 뜬다. 과연 저 동물들이 인간의 품에서, 혹은 인간의 품을 떠나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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