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가지마...
나는 관객을 만만하게 보는 모든 것들이 싫음.
오만하게 관객을 한 수 가르치려고 한다거나 꼼꼼하게 준비 안 됐을 때 특히 그렇고. 예쁘기만 하고 의미는 생각 안 할 때, 혹은 의미만 생각한 나머지 감상할 때 불편함이나 불쾌함이 느껴질 때 등등.
그런 의미에서 퓰리처상 사진전 역시 관객을 아주 만만하게 보는 전시회라고 생각됨.
사진들은 좋았음. 보도윤리나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할 지점도 많았고,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부터 사소한 시민들의 모습까지 고루 선정된 것이 좋았음. 하지만 주제 자체가 다양하지는 않았음. LGBT 운동, 여성운동, 기후위기 등 굵직한 문제들이 많이 있는데, 사진전에서는 볼 수 없었다. 또 미국인 중심적인 작품이 대부분이었음.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역시 미군이 개입했기 때문에 사진이 많았던 것)을 제외하면 동아시아 관련된 사진의 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관련 사진도 적은 게 아쉬웠고. 현대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이슈였을 텐데. 이건 사진전의 문제가 아니라 퓰리처상의 관행일지도. 좀 조사를 해봐야겠다.
제일 최악이었던 것은 작품 옆에 있는 캡션과 설명. 여기서 아주 관객들을 만만하게 보는구나 싶었음. 우선 작품의 제목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붙였는지 모를 슬로건이 작품마다 큰 글씨로 적혀 있음. 약간 애플 감성 (for the colorful, bigger than bigger 이런거 뭔주 알지) 노린 거 같긴 한데 재미도 감동도 없고 오히려 보는 데 방해가 됨. 구구절절하고 유치함. 심지어 노숙자들이 나온 사진에 '인생막장'이라고 사족을 붙임. 진짜 어이없다. 또 큐레이터의 소감이나 작품의 의미 같이 주관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이 또한 방해가 됨. 왜 대신 해석을 해주는 거죠? 차라리 사진과 같이 있던 기사 내용이라도 적어주지...싶었음. 큐레이터가 자꾸 선을 넘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단순 불편을 떠나서 관객의 관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음. 이게 진짜 오만한 것.
무조건 수정되어야 할 워딩이 아주 많았다. 21세기에 베트남 국민들에게 '베트콩'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퓰리처상 전시에서 보고 있다는 게 아주 놀라웠다 (태극기 부대 제외). 흑인 운동가들을 '폭력적'이라고 서술한 것도. 번역 진짜 할말하않...그리고 분명 사진 제목에 Phisically and mentally disabled people이라고 되어 있는데 '지체장애인'이라고만 해둔 점, 해외에서도 더이상 쓰지 않는 Retarded 라는 용어를 '지진아'라고 직역한 점 등 다분히 장애 혐오적이다. 구글번역기 돌리셨나요? 어순도 안 맞고, 직역을 한건지 문맥에 안 맞는 단어 너무 많았음. 차라리 영어 제목만 봐야지 했는데 글씨가 너무 작았다.
화룡점정은 나가는 길에 있던 설치미술... 아주 깨-끗한 벽돌 부순 다음 그 위에 대충 스크린 세 개 박아두고 '불쌍한' 난민들 얼굴 보여주는 기획이었다. 진짜 이상했다. 우선 폐허를 연상시키고 싶었던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벽돌이 너무 깨끗하고 디자인도 균일했다. 나레이션으로 다양한 사진기자들의 명언 같은 걸 읊어주는데 다 같은 목소리더라고요??ㅋㅋㅋㅋㅋㅋㅋ 인건비가 없으셨나봐...만 오천원이나 받으면서.. 사실 그 설치미술의 존재 자체가 의아했다. 차라리 캡션에서 말고 여기에서 퓰리처상을 전반적으로 해석하거나 작품들의 의의를 통합해서 설명하시지.... 그냥 재탕하는 것에 불과했다. 마무리되는 느낌이 안 드는 마무리.
그냥 가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