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어락>, 택배수령대행업체의 <신림동 삐에로> 광고를 보고
지난겨울 개봉한 공효진 주연의 영화 <도어락(2018)>이 1인 가구 여성의 일상적 공포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다고 찬사를 받았던 것을 떠올린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인 나 역시 흐름에 뒤처질 수 없어 영화관을 찾았다.
<도어락>은 역시 <살인의 추억(2003)>, <추격자(2008)>가 지적했듯이 경찰 집단의 무능력함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의가 있었다. 범인보다 한 발짝, 아니 두 발짝 뒤처진 경찰을 보며 나는 가슴을 퍽퍽 때렸다. 하지만 나는 엔딩크레딧도 보지 못한 채 엉엉 울면서 영화관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매일 밤 주인공 경민의 집에 들어와 집주인 행세를 하고, 급기야 나체로 경민을 품에 안고 자는 영화 속 범인의 모습은 다분히 포르노그라피적으로 상영된다. 천장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듯 잡힌 앵글은 영화 <귀향(2015)>이 그랬듯 끔찍하고 충격적인 인상을 준다. 사실 전달과 영화적 연출 사이에서 연출가들은 늘 외줄 타기를 하겠지만, <도어락>의 이 장면은 "굳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변명할 수 없을 만큼 필요가 없다고 느껴진다. 여성 관객은 노골적이지 않은 작은 장치들에서도 충분히 공포심을 느끼며, 영화에 이입한다. 예를 들어, 극 초반 경민이 지문이 묻은 도어록을 목도리로 벅벅 닦는 장면은 폭력 상황을 직접적으로 그려내지 않았지만 공포심을 주기에 적절했고, 흡연을 하지 않은 경민의 집 앞에 담배꽁초가 버려진 장면 등을 통해 범인의 존재를 인식시킬 수 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범인이 나체로 경민을 껴안고 있는 장면에 나를 자연스레 대입했고, 나 역시 이런 끔찍한 성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하며 경민과 같은(비슷한) 크기의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굳이 일상적 공포, 아픈 상처를 들춰내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을 만큼 이 장면이 중요했을까? 질문한다면 잘 모르겠다.
결국 극 중 경민은 '경찰의 도움 없이 도망치다 폐가에 들어가게 되었고, 범인과의 몸싸움 끝에 갑자기 넘어진 장롱에 박혀있는 못이 범인의 뒷목을 찌르는 바람에' 아주 운 좋게 위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런 서사는 여성 관객들에게 무기력을 안겨주고, 결국 '혼자 살지 말자', '보안이 강력한 곳에 살자'라는 교훈을 주며 자신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데에 일조한다. 영화는 범인이나 강간사회가 아닌 선택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안전장치인 '도어락'에 초점을 맞춰 개인이 돈을 들여 자신의 안전을 지키게 만든다. 친구들과 영화관을 나서며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했다.
얘들아, 이제 내일모레 되면 페이스북에 이런 거 뜨겠다.
[영화 도어락 봤음? ㅎㄷㄷ 새로 나온 이중잠금장치와 지문 남지 않는 도어락만 있으면 안심귀가! 혼자 사는 친구 태그하고 도어락 선물 받기! @친구야]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도어락이 개봉한지 며칠 만에 자취생 커뮤니티, 인테리어 커뮤니티 등에 더욱 튼튼해진 안전장치 광고들이 업로드되었다. 영화의 충격에 휩싸여있던 나 역시 살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차차 영화 '뽕'이 빠지면서 (돈도 없고) 그냥 이대로 살기로 했다.
게다가 2019년 상반기에는 남성이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하는 범죄가 연일 보도되었다. 한 남성이 귀가하는 여성을 따라가 현관문 틈 사이에 손을 넣어 힘으로 문을 열려고 했던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자신의 집까지 따라오던 남성에게 빌라 정문 비밀번호를 눌러보라고 하여 가까스로 위험상황에서 벗어난 여성의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불과 일주일 전 유튜브에서 <신림동, 소름 돋는 사이코패스 도둑 CCTV 실제상황>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았다. 보도된 여타 다른 사건들과 같이 CCTV 화면과 비슷하게 앵글이 잡힌 이 영상의 배경은 신림동에 위치한 한 빌라 복도였다. 1분 30초가량의 영상에는 남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삐에로 탈을 쓰고 나타나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러보다가 결국 현관 앞에 놓여 있는 택배 박스를 들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영상은 택배 대리 수령 업체에서 만든 서비스 홍보 영상이었다.
공포심을 자극해서 상품이나 가치를 홍보하는 마케팅 수법은 흔히 볼 수 있다. 금연 광고, 건강 캠페인, 입시학원 홍보 등에서는 '당신이 이 상품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바뀌지 않는다면) 당신의 인생은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심어준다. 하지만 개인의 공포심을 자극할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함을 요한다. '이 광고를 통해 느끼게 될 공포심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상품(자본)이 아닌 제도(정치)로 공포심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공포심을 느끼게 될 사람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 스스로 공포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육, 법, 행정, 제도 등 어느 분야에서도 성폭력의 본질에 다가가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성폭행을 예방하기 위해 짧은 치마를 입지 않는다'라는 구시대적인 교육을 지속하고 있고,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자꾸 집행유예를 받는다. 대신 강력한 자본주의가 국가의 빈자리를 채운다. 자본가들은 국가가 수행하지 못하는 기술을 상품으로 개발함으로써 시민(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한다.
‘국가 없음’은 국가가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재분배와 복지 기능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국민마저도 ‘국가 없음’의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가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시장에 많은 것을 양도한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기 정당성과 권위를 확보하는 방법은 국가가 가진 문화적 이데올로기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 국가가 복지 정책에서 후퇴할수록 여전히 국가는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안보와 치안을 강조하는 문화적 논리는 강화된다. - 김현미, <인종주의 확산과 '국가 없음' 중>
신림동 삐에로 자작극 사태는 돈에 눈먼 악한 개인의 잘못을 탓하며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런 마케팅이 '먹히는' 사회, 더 본질적으로 다가가면 '강간문화' 그 자체, 국가의 부재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서는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나는 '도어락'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