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이 지옥을 대하는 법
"옛날 옛적에 <댓읽기>라는 공영방송 자사비평 유튜브 콘텐츠가 살았답니다."
전설을 읽듯 정준희 교수님의 추천사를 읽었다. 책이 출간된 게 올 초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쫌만 쉬다 오겠습니다."
고별이라 쓰고 휴방이라 읽고 싶은 마지막 방송이 작년 2023년 12월 31일, 1년도 지나지 않았다니. 지난 10개월간 언론, 특히 공영방송이 무너지고 '빵과 포도주'가 성스러운 영역에서 방통위원장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속 좀스러운 영역으로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며 정말 그 고별이 고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KBS가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아래 '댓읽기')>라는 '4차 언론혁명'의 서막이 될 방송을 안고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던 때는 '사실상 호시절'이었던 것이 아닌가...
"인간이 느끼는 공포 중에서도 극복하기 어려운 게 고립감이다."
-정준희 교수 추천사 中
정준희 교수님의 추천사를 한 자, 한 자 필사노트에 옮겨 적어봤다. 끝까지 적고 나니 결국 '고립감'이라는 한 단어가 남았다. KBS의 <저널리즘 토크쇼 J>도, 댓읽기도, TBS의 <해시태그>도 방송국에서 만든 언론 비평 방송들은 늘 그 고립감을 감수하는 일로부터 어렵게 시작됐고, 소속 안이 아닌 소속 밖의 시청자들과 연대감을 가지는 일이 잦았고, 그리고 이제 모두 사라졌다.
고립. 외로울 고(孤)와 설 립(立) 자가 조합된 한자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어 사귀지 아니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외따로 떨어짐."이라고 풀이돼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인 1940년, 개인이 편찬한 최초의 근대적 국어사전으로 평가되는 문세영의 <조선어사전> 속 '고립'은 훨씬 더 '고립적'이다.
"외롭게 섰는 것."
'고립감'은 놀랍게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아직 수록되지도 못한 단어다. 아직 표준어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채로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에만 수록돼 있다. 표준어의 지위 면에서는 '고립감'이나 '그립감(grip-感)'이나 같은 처지에 있는 단어인 셈이다.사전에 오르지 않아도 쓰이는 말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저 아직 사전에 오르지도 못한 채 '섰는' 그 단어가 정말 외로워 보였다.
"이탈로 칼비노는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이미 여기 와 있는 지옥을 벗어나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는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옥에서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 백승주 <미끄러지는 말들>(p.211)
이처럼 <댓읽기>가 지닌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먼저 시청자(독자, 소비자)에게 손을 내밀고,
'소통하겠다'라고 나선 것은 한국 언론사에 중요한 포인트이자
기억해야 할 지점이라고 본다.
- 본문 80쪽
외롭게 섰던 기자들이 '소통'이라는 하나의 뜻으로 모였고, 5년 반 동안 구독자 24만 명, 813개 영상을 게시하는 기록을 세웠다. 현재까지 '전무후무'한 이 콘텐츠를 늘 애청하고 애정하는 마음을 담아 댓글로 응원하고 지지했지만 그게 이 채널이나 공영방송 같은 것을 지켜낼 수는 없었다. 이제 시청자, 독자, 소비자로서도 미디어 리터러시 그 이상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댓읽기>가 찬란하게 돌아올 때까지 '댓읽기우제'를 지내며...전설처럼 이 책을 읽고 또 읽으며, 밑줄치고, 인덱스 플래그를 붙이고, 기도문을 쓰듯 필사하며 "기둘리고"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