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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조 Oct 26. 2024

2년 전 오늘 스토리가 알려준 것

새 꽃을 갈아 꽂는 마음에 관하여

간만에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폰을 열어보니 2년 전 앨범 스토리가 떠 있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만들어진 스토리에는 유독 꽃 사진이 많았다. 음악과 사진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경쾌한 순간의 기록이 아니었으니까.


휴대폰 갤러리 카메라 폴더를 한참 밑으로 스크롤해서 2022년 5월 즈음의 사진들을 찾아 하나씩 넘겨봤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암 크기를 줄이기 위한 방사선 치료를 받고, 항암치료를 이어가던 그 때다.


"엄마는 꽃이랑 피자 좋아한다. 너네 나중에 시집 장가가도 엄마 집에 올 때는 꽃이랑 피자 사와라~!"'


항암치료를 받고 온 날은 종일 근육통과 울렁거림에 일어나 활동하기 힘든 엄마를 위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사소한 일이 꽃을 사는 일이었다.


평소에 누군가 나에게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늘 "느리게 걷는 사람'과  "꽃을 들고 가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 따뜻한 봄에 꽃을 사고, 꽃을 나르고, 꽃을 꽂는 내 마음은 그다지 설레거나 행복할 수 없었다.


엄마가 시든 꽃을 보지 않도록 매일 화병에 물을 갈고, 새 꽃을 갈아 꽂는 일은 그저 털어놓을 곳 없이 답답하거나 자주 눈물이 나고, 한편으로 꽃의 색과 향으로부터 생(生)의 기운이 고스란히 엄마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뿐이었다.


다른 사진들도 넘겨본다. 회사 근처에서 사먹던 샐러드, 포케, 죽 사진 같은 것도 있고 그때 읽고 있던 책,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공교롭게 선택된 이 책 때문에도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의 표지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엄마의 투병 이후에 펼쳐지게 될 나와 가족들의 삶을 떠올리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엄마 없는 삶'의 영역까지 넘어갔다 오면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소화도 되지 않고 일의 긴장을 잠시 푸는 점심시간만 되면 그렇게도 눈물이 터져나오곤 했다.


그리고 항암으로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던 6월, 외할머니 생신에 갈 수 없었던 엄마를 대신해 동생과 함께 여수 외할머니 댁에 가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식구들 말고는 엄마의 상황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할머니가 키운 매실, 양파, 마늘 같은 것을 정리하고 사촌들과 해사하게 웃으며 찍었던 사진들도 기록돼 있었다.


치료를 다 견뎌내고, 빠졌던 머리들도 다시 자랐고, 엄마가 일상을 온전히 되찾은 지금, 문득 올해 한 번도 엄마에게 꽃을 선물하지 않았다는 걸, 휴대폰이 추천한 2년 전 사진들을 보고 깨달았다.


엄마가 항암을 무사히 이겨내고 다시 건강해지기만을 바랐던 그때의 마음과 달리 언제 그랬냐는 듯 툭하면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내가 자주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의 사진첩 속에 제철 맞은 꽃 사진들이 남아 다시, 2년 후 어느 날 추천 스토리에서 볼 수 있도록 내일은 오랜만에 꽃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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