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정하기
그동안 내가 바래왔던 건 늘 유능하고 성공한 기업가였다. 어딜 가든 인정받고, 내 영향력을 실감하길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계처럼, 내 몸을 갈아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러번 시도했다. 이상했다. 작은 성과를 내도, 주변에서 건네는 축하와 인정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아득히 펼쳐진 미래만 버겁게 다가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저 끝에는 뭐가 있지? 끝이 있긴 한가? 난 행복한가? 나중에라도 행복해질 수 있나? 수많은 물음표만이 머릿 속을 떠다녔다.
그러면서 하나둘 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강박처럼 빼곡하게 채우던 일정표를 내려놨고, 맡고 있던 일을 하나씩 내려놨다. 모임을 줄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렸다. 그렇게 천천히 내려놓는 변화에 불을 붙인 건 24년도의 파업으로 인한 휴학이었다. 외부 요인으로 이렇게 계획이 틀어진 건 처음이었다. 무력함과 불확실성이 훅 다가왔고, 나를 압박하던 학교에서의 인간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시간이 늘어났다.
내가 원하던 걸 시작했다. 우선 학교 공부의 부담을 내려놓고 다양한 책을 읽기도 했고, 논문을 읽기도 했다. 좋아하던 요리를 할 기회도 늘었다. 생각과 산책에 잠길 여유도 생겼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웹/앱 개발 공부에 집중하기도 했다. 우연찮게 짧은 연애도 하게 됐다.본격적으로 혼자가 되어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열심히 산 시기도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게 뭔지 치열하게 따져 물었다.
그렇게 깨닫게 된 건, 일에 미친 ’커리어 우먼’은 내 행복이 아니라는 거다. 난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누군가를 챙기는 것도 좋아한다. 체질적으로. 그동안 ‘전통적인 여성상’이라 불렸던 것들을 의식적으로 밀어냈던 게 아닌가 싶다. 그것조차 내 일부였는데. 일에 몰두하는 아버지와 가사에 헌신하셨던 어머니 사이에서, 그간 늘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아야 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안에 어머니의 성향도 녹아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일을 좋아하지만, 스스로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먹이고 책을 가까이하며 생각을 굴리는 시간도 내겐 꼭 필요하다. 더 이상 그런 시간을 ‘비생산적‘이라 치부하며 누리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말아야 겠다. 전에는 외로움 때문에라도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돌보고 싶고 돌봄 받고 싶은 욕구를 스스로 잘 다스릴 수 있다면, 독신으로 사는 삶도 괜찮겠다 싶었다. 일에 헌신할 자신이 없는 것처럼 육아에 헌신할 자신도 없기 때문에,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날 알아주지 않더라도, 바라는 미래에 조금씩 가까워지며, 스스로와 많은 추억을 쌓는 삶을 누리고 싶다. ‘낭비‘라고만 생각했던 삶의 단면까지 다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