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댕굴 Aug 24. 2020

시작

필름카메라를 샀다



내가 처음 필름카메라를 갖게 된 것은 2018년 가을로, 한국에서 필름카메라 열풍이 불기 직전이었다. 지금은 일회용 카메라를 필두로 점차 필름카메라가 유행이 되어 길거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으나 당시만 해도 필름카메라는 일부 사진 덕후들 사이에서나 지속되는 그런 잊혀져가는 물건 중 하나였다.


외국 하이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캐릭터가 꼭 한 명씩 나오는데 만약 내 학창시절을 이로 만든다면 내가 그 인물일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좋은 카메라가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집에 있는 카메라를 챙겨 가 운동회나 학교 축제와 같은 행사 때마다 친구들의 사진을 찍은 후 친구들에게 보내주곤 했다. 결과물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친구들에게 큰 칭찬을 받은 것도 아니었으나 그냥 즐거워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담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행복한 일이었다.


대학에 가면 사진부에 들어가고 싶다는 작은 꿈도 있었으나 새내기의 삶은 로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 사람들과 어울리고 술을 마시고 벼락치기 시험 공부를 끝내니 이미 첫 학기가 지나갔고, 대학 입학 전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교환학생들과 함께 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더이상 새내기가 아니었다. 첫 1년을 너무 막 살았다는 생각에 공부에 집중하기로 다짐했던 2학년 1학기는 지루함 그 자체였다. 공부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뚜렷한 목표나 방향도 없이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나는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 옆의 할리스에서 이틀 남은 회계 시험을 공부하던 때 과 홈페이지에 뜬 공지를 보고 톡방에 메세지 하나를 보냈다.


"얘들아 나 도쿄 갈까?"


그리고 그 주 주말에 영어 시험을 보러 갔던 나는 네 달 뒤 도쿄대학교 교환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일본에 도착했다. 전 날 새벽까지 연극 동아리 뒷풀이를 하고 돌아온 뒤 세 시간만에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한 학기 치의 짐을 싸고 헐레벌떡 공항으로 향했을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레어 걱정보다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쿄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곳에서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꿈과 목표가 생길 것 같았고, 일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영화같은 사랑을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쯤 깨달았다. 아, 딱히 다른 게 없구나!


학교에서 수업 듣고 과제를 하다가 저녁 먹고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넷플릭스를 보고 주말에는 쇼핑을 하거나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일상은 내가 서울에서 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광지라고 해도 이미 일본에 여러 번 방문해 본 나에게는 그리 큰 감명을 주지 못했고, 모든 것이 자기 나라와 다르다고 쉴 새없이 탄성을 터트리는 외국인 친구들을 보며 나도 일본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갈 걸 왜 이곳을 왔을까 하고 나의 성급한 결정을 후회하기도 했다.


이틀의 공강이 있어 주말까지 하면 쉬는 날이 학교가는 날보다 많았던 나는 그 남아도는 시간들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있을 때 열심히 일본의 다른 도시들을 방문하며 여행을 했어야 하는데 학교 수업을 땡땡이 칠 용기가 없는 쫄보였던 나는 도쿄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여유라는 걸 즐겨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남는 시간이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 시간을 의미있게 써야하고 무언가 배워야한다는 강박에 그렇게 원하던 여유가 생겼음에도 어떻게 하면 바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고 싶진 않았기에 공부 이외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배우고 싶었던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씩 적어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그 후로 나는 스케이트보드를 탔고, 예쁜 카페에 앉아 가사를 썼다. 한국에서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한 일들이었다. 그러자 마법처럼 도쿄에서의 생활이 행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들을 잊기 싫어 더 많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거운 카메라를 매일 같이 들고 다니는 게 힘들어 점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정성을 들여 찍은 사진보다는 감정없이 기계적으로 찍은,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찾아보지 않을 사진들만 갤러리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시부야 크로싱의 츠타야 서점 2층에 위치해있는 스타벅스에 혼자 앉아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때, 수많은 관광객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 속 들어본 적 없는 이상한 소리가 귀에 꽂혔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고개를 돌리니 딱 봐도 오래된 것 같은 카메라를 들고 창 밖을 찍고 계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후로도 수 십 혹은 수 백 장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 속에서 할아버지는 딱 세 장의 사진을 찍고는 은은한 미소를 띈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보셨다. 할아버지의 손에 들린 카메라를 유심히 보던 나는 그 카메라가 다른 카메라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순간 휴대폰을 켜서 검색창에 다섯 글자를 입력했다.


필름카메라



다음날 나는 신주쿠 골목길에 위치한 할아버지 두 분이 운영하시는 중고 카메라 가게에 방문해 5400엔을 주고 작은 니콘 자동 필름카메라를 손에 넣게 되었다. 충동적인 결정이 아닌가 싶었지만 필름도 들어있지 않은 카메라를 손에 쥐고 몇 번 찍는 시늉을 해보니 이상하게 설렘이 느껴졌다. 그리고 필름을 구매하며 이 필름카메라가 얼마나 비싼 취미가 될 것인지를 깨달아 사진 한 장의 가격을 계산해보며 나와의 약속을 하나 했다.

정말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만 셔터를 누를 것. 여러 번 다시 꺼내 볼 사진을 찍을 것.

이는 카메라를 산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는 나름의 신념이 되었고 덕분에 찍은 사진들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당시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필름카메라를 사용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필름카메라의 매력을 알게 되는 것이 행복하다. 필름카메라는 원하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거듭하여 다시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누구는 이것이 불편하다 말하겠지만 나는 이 것이야말로 내가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늘 빠르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던 나는 사진을 찍고, 기다리고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여유와 완벽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멋을 배웠고 내가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과 바다를, 맑은 하늘을, 푸른 나무를, 내 친구들의 웃는 얼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어딜 가서도 주변을 꼼꼼하게 둘러보는 습관이 생겼고, 사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게 되었다. 옛날에 그냥 지나쳤을 것들에서 의미를 찾기 시작했고 나의 취향과 시선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모두 필름카메라를 사용한 덕분이다.


2년동안 일본, 한국, 유럽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일상을 담았다. 500장이 넘는 사진들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내가 정말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만 셔터를 눌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이 사진들을 하나씩 세상에 공개하고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가마쿠라, 일본

필름카메라를 사고 처음 찍었던 사진. 필름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아 실수를 해서 철길 사진과 바다 사진이 겹쳐져 버렸다. 그래도 나름 운치있지 않은가? 철도와 바다가 절반씩 나와 한 사진에서 가마쿠라를 느낄 수 있다. 라고 포장할 수 있을정도로 필름카메라로 찍는 사진들은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계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