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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굴 Dec 11. 2020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코로나에서 살아남기

4개월간 함께 한 나의 코로나 동지들을 추억하며


Iris, Daniel, Elena, Louis, Ingrid, Sid, Vitali, Ainoha, Elene, Marina, Irina, Unat, Joan, Harsh, Salome, Til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Rebecca, Vicky, Lotta, Chris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쩜 그리 다양한 사람들만 모였을까 싶다. 스페인, 헝가리, 스위스, 프랑스, 에스토니아, 인도, 우크라이나, 조지아, 이탈리아, 독일, 브라질, 포르투갈이라니 어디가서 만나기도 힘든 그런 사람들이랑 4개월동안 매일같이 얼굴보고 부대끼며 코로나 시기를 함께 했다.


학기 초, 코로나가 터지기 전의 나는 ESN을 통해 만난 (교환학생 교류프로그램이다) 다른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펭구와 펭구 친구들과 노느라 굉장히 바빠 사실 기숙사 친구들과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그냥 부엌에서 만나면 대화 좀 하는 사이 그것 뿐이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비대면 수업으로 바뀐 후에는 다른 기숙사에도 놀러갈 수 없었고, 카페와 레스토랑도 모두 닫아 city center에 가도 할 게 없었기에 같은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놀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르겠다. private house에 살았다면 그 긴 시간동안 뭘 했을까. 어쩌면 한국에 돌아왔을지도. 하지만, 이 이상하고 어메이징한 친구들과 함께 한 4개월은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으며 매일 매일이 파티 그 자체였다.


초반에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다같이 대책 회의를 위해 모였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칙을 만드는데 이 때 누군가는 규칙을 안 지킨 사람에게 punishment를 주어야 한다고 했고, 이에 반발하는 의견도 나왔는데 이 토론 과정을 지켜보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 때 이미 알아차렸지만, 아주 다양한 background를 가진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의견충돌이 많았는데 모나거나 예민한 사람도 없고 항상 웃으면서 둥글둥글하게 넘어가는 순둥이들이었기에 4개월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하면서도 한 번 싸운 적이 없었다. 성격 이상한 사람 없어서 다행이라고, 웃으며 우리는 다 운이 좋다고 말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꿈꾸던 교환학기가 코로나 때문에 엉망이 되어 슬프지 않냐고 물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생각보다 재밌었어라고 답하곤 했다. 물론, 이는 흐로닝언의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내가 많은 사람과 함께 살고 있었고, 야외에서 여전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코로나 초반에는 25명 정도 되는 우리가 (56명 규모의 기숙사였으나 많은 학생들이 돌아갔다) 과연 하나의 household인지에 대해 이웃들도 우리도 긴가민가 했는데 정부 발표 지침에 따르면 우리는 주방과 화장실을 share하기 때문에 하나의 household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외부인과의 만남을 최소화하고 있던 우리는 거의 우리끼리만 어울렸기에 하나의 household로 생각하며 다른 활동들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초반에 우리는 <Erasmus Corona Plans>를 만들어 quarantine 기간 동안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적은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실제로 꽤 많은 것들을 끝낸 것 같아 모두 뿌듯해 하던 기억이 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런걸 한다고? 싶은 터무니없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뻔한 것도 새로운,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하면 재밌고 또 코로나 시국에 하면 더 재밌다.




배구, 축구, 농구는 기숙사 뒷마당 혹은 동네 공원에서 거의 매일 하였으며 가끔은 동네 꼬맹이들과 함께 하기도 했는데 당연히 우리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늘 메시 옷을 입고 우리랑 축구를 하던 초딩이 있었는데, 영어도 잘 하고 칭찬 해주면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서 너무 귀여웠다. 종종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네덜란드어로 이야기하며 웃곤 했는데 우리는 그게 우리를 놀리는건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우리도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웃고 떠들곤 했다. (스페인 친구들이 많기도 했고 어쩌다보니 영어 이외에 소통 가능한 언어가 스페인어였다.)



또한, 퍼즐을 사다가 복도에 책상을 하나 놓고 시간 되는 사람들이 맞추기로 한 후 나름 열심히 맞추고 있었는데 어느날 기숙사 업체에서 대청소를 하러 오셨을 때 그 퍼즐을 다 정리해놓으셔서 다들 heartbroken이라며 슬퍼했던 기억이 있다.






온라인 수업을 듣다보니 우리의 daily routine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는데, 새벽 4-5시에 자고 12시에 일어나는게 일상이 되었버렸다. 밤마다 맥주를 마시며 보드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면 그 끝은 항상 토론이었는데, 다같이 침대에 누워서 혹은 부엌에 있는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세상의 이런 저런 주제로 이야기하면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없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제에서부터, 낙태, 학교폭력, 아동학대, 정신건강, 빈곤 등의 만국 공통의 문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가끔 그 끝에 마당에 이불을 끌고 나가서 다같이 누워 별을 보던 것까지 특별하지 않지만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순간들인 것 같다. 한창 이야기를 하다가 나 이제 자러갈게 하면 굿나잇 하고 보내주던 인사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만 하고 잠옷차림으로 부엌들을 돌아다니면 들을 수 있던 굿모닝 인사까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아침에 일어났는데 혼자라는 사실이 가장 서러웠던 것 같다. 아침에 팬케이크 냄새에 눈을 뜨고 나를 깨우러 방에 노크도 없이 마구 쳐들어오던 막무가내 말괄량이들이 가끔은 그립다.






흐로닝언은 매우 작아서 자전거를 타고 온 도시를 누빌 수 있다. 우리는 자주 자전거를 타고 excursion을 하곤 했는데 20-30분 정도 걸리는 호수에 가서 바베큐를 하고 수영을 하며 놀거나, 때론 한 시간이 넘게 페달을 밟고 아주 먼 곳에 가기도 했다. 돌아오면 모두가 기진맥진 했지만 도착해서 먹는 간식과 수영을 위해 2주에 한 번은 꽤 긴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함께 하면 가는 길도 재미있다. 서로 장난치고 수다 떨면서 자전거를 타다보면 말과 소 그리고 염소 같은 동물들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파티를 하러 밖에 나갈 수 없었지만 우리에겐 25명의 사람과, 꽤 넓은 기숙사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 나름의 파티도 종종 열곤 했는데 그냥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노는 단순한 파티는 물론이고 꽤 본격적인 행사들도 있었는데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은



1. No Clothes Party

옷빼고 다 입을 수 있는 테마의 파티. 그 날 오후부터 우리는 기숙사를 떠난 친구들이 버리고 간 커튼, 이불 등을 가지고 직접 바느질을 해서 입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베스트 드레스는 이케아 쇼핑백과 파란 쓰레기 봉투로 드레스를 만들었던 비키. 나는 커튼으로 점프수트를 만들었다.


2. Gala

코로나로 인해 기숙사에만 있다보니 똑같은 옷만 입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화장은 커녕 잘 씻지도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고 우리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 Gala를 열어 각자 가지고 있는 좋은 옷을 입고 오랜만에 꾸며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들 열심히 세팅해서 고품격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술도 열심히 마셨다.


3. Oscar Night


코로나 플랜에 movie making이 있었기에 학기말에 우리는 각자 동영상을 만들어 이를 상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름 시상식과 소감까지 할 정도로 구색을 잘 갖추었고 퀄리티 있고 다양한 장르의 영상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옷도 Oscar에 맞게 잘 차려입어야 했다.




나와 부엌을 share해서 가장 많이 요리를 한 Iris, Elena, Marina


하지만, 역시 4개월을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역시 아이들과 함께 요리를 한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매일 같이 하는 거 뭐가 특별하냐 할 수 있겠으나 매일 매일 실험에 가까운 요리를 하며, 똥손이었던 나도 돌아와서는 직접 음식을 해 먹는 프로자취러가 되었기 때문! 그리고 워낙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과 함께 살다 보니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매일 같이 즐길 수 있었다. 비록, 네델란드에서 식당은 많이 못 갔지만 어쩌면 그거보다 더 맛있을 아이들의 부모님, 혹은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요리들을 실컷 맛 볼 수 있었다.






일요일이면 각자 음식을 하나씩 가져와서 브런치를 먹곤 했다.







생일자가 받을 수 있었던 귀여운 케이크






각자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와서 나눠먹는 international dinner도 두 번 했는데 나는 김밥과 잡채를 만들어갔고 반응도 굉장히 좋았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 친구 덕분에 정통 까르보나라와 리조또를 먹고 라자냐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었으며 인도 친구의 어머니 레시피로 난을 직접 만들기도 했고 우크라이나 식 양배추롤, 브라질의 푸딩 간식까지 어디가서 쉽게 먹어보지 못할 것들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우리끼리 차를 렌트해서 Utrecht로 당일치기 여행, 그리고 delft와 놀이공원으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매일 같은 곳에서 보다가 함께 여행을 가니 또 색다른 느낌이어서 우리 모두 신났던 것 같다. 카약을 타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많이 해보지 못했기에 처음엔 망설여졌지만 친구들이 잘 알려주고 도와줘서 나중엔 즐기면서 열심히 할 수 있었다.






4개월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매일 같이 함께 한 친구들을 떠나보낸 6월과 7월은 눈물과 웃음으로 가득했고, 그 때 우리가 약속했던 크리스마스와 뉴이어를 헝가리에서 함께 하기는 코로나로 인해 결국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지만 하루 빨리 아이들과 다시 만나 이야기 꽃을 피울 그 날이 오길 바란다.


비록 내가 원하던, 꿈꾸던 교환학생 생활과는 조금 다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쾌활한 기억만으로 가득차게 만들어준 소중한 나의 코로나 동지들이 있어 먼훗날 2020년을 추억할 때, 그리 끔찍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Albertine Family, stay safe and see you soon xx







교환학생 정리 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v928JH6Rd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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