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마지막 수업은 나와 함께
김지수 작가가 펴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라고 추앙받는 이어령 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우리들에게 어떤 말씀을 남기셨을지 정말 궁금했다. 한편으론 '그동안 하신 이야기들의 총합이 아닐까?' '뻔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엄청난 파도 위에 올라갔다 내려온 것 같다. 요동치는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떠오른 감정들을 써보았다. ‘슬픔’, ‘분노’, ‘허무’, ‘질투’, ‘위로’ 같은 단어들이다. 여러 감정들이 서로 내가 먼저라고 우기고 있었다. 그중 '분노'라는 단어에 꽂혔다. 이 훌륭한 책을 읽고서 '분노'를 느꼈다고? 다른 좋은 감정들 다 놔두고 왜 하필 '분노'인가?
허무하게 그 답은 이미 책의 첫 문장에 있었다. 영리한 작가는 프롤로그 첫 구절에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라고 써놓았다. 이런 스승을 가지지 못해서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들었던 스승의 청량한 목소리를 전달해줄 테니 잘 들어보라고 한다.
빈말이 아니다. 작가는 스승의 지성과 감성을 잘 버무려 정갈한 요리로 만들어 우리 앞에 놓아주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문장은 흰 접시가 되어 훌륭한 요리를 더 빛나게 해 준다. 자기 자랑은 커녕 끝까지 겸손한 작가를 나는 미워하지도 못한다.
이어령 선생께서도 서른이 넘어서는 믿고 따를 스승이 없어서 외로웠다고 한다. 다르게 살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남달라서 더 외로웠다고 한다. 그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외로움이다. 오직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철학을 하고, 과학을 해야만 지울 수 있는 외로움이다. 그래서 성공했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뒤집어 보면 다 실패자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모순이 가득한 고통스러운 존재라고 한다.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선생님의 말이 가슴에 진하게 남는다.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쓰는 순간 두렵다. ‘누가 나를 공격하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누가 재밌어할까?’ 걱정이 몰려온다. 그런데 이어령 선생께서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 쓴다고 한다. 더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해야 만인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아, 더 철저하게 에고이스트가 되어도 되겠구나.’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진짜 스승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누군가와 이런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던가? 없었다고 하면 너무 슬픈 일이다. 생각해보니 선생이 돌아가시면 그 빈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 세상의 이치를 누가 이렇게 쉽게 설명해줄 것인가? 세상은 날이 갈수록 가벼워지고,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 둘 이 지구를 떠난다. 남은 자들은 무엇에 기대어 살아야 하나?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선생은 인간이 지혜를 가져서 오히려 슬프다고 한다. 그렇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 같아도 인간은 신이 아니다. 선생의 말처럼, 인간은 신과 생물의 중간자로서, 양극을 가진 모순적인 존재라서 더 슬프다.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고통스럽다. 이유는 모른다. 생의 한계, 인간의 한계. 신이란 무엇이며, 인생이란 무엇인가? 겨우 소식 한 자락 듣고 이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나야 하나? 회색 하늘처럼 내 마음도 자꾸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