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지 같은 글을 쓰게 해 주세요!”
2021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이면 나는 55세가 된다. 처음 50대에 들어섰을 때 내 나이를 부정하고 싶었다. ‘50살... 이건 악몽이야.... 이럴 순 없어!!!’ 그런데 세월은 내 마음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갔다. 내년, 딱 50대의 중간이 되기 전에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미뤄온 과제였다. 블로그나 글쓰기 모임에서 글을 쓰면서도 브런치 작가를 신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12월이 되니 내 마음이 급해졌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잠 안 오는 새벽에 미친 듯이 신청서를 작성했다. 미뤄온 시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완성했다. 쌀 포대 끈을 풀듯 첫 실마리를 찾으니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이 술술 풀려나왔다. 다음 날에 바로 승인 메일이 왔다. 가끔 사람들이 올리던 그 캡처 화면...ㅎㅎ... 그러나 작가 선정된 기쁨도 잠시... 첫 글을 올릴 수가 없었다. 멋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 강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나는 밀접접촉자라서 자가격리 중이다. 확진자는 10일 격리인데,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는데도, 나는 17일간이나 격리를 당해야 한다. 감옥에 갇힌 기분이다. 감옥에서 할 일도 없으니 글이나 써야겠다.
앞으로 내가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쓸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한 것이 책 읽은 것 밖에 없다.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 소설도 읽고 아이들 책도 읽고 내 마음대로 읽었다. 문학 작품을 읽어도 아름다운 표현에는 관심도 없이 그냥 줄거리가 궁금해서 끝까지 읽었다. 그래서 내 글은 문학적 표현은 찾기 힘들다. 원래 사람의 각종 행태에 관심이 많아, 스토리를 쫓아가던 습관을 버리기 힘들다.
사실 문학적 향기가 넘쳐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해서 브런치 작가 신청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마음을 비웠다. 김 훈 작가의 <연필로 쓰기> 산문집에 “오이지를 먹으며”라는 글을 읽고 나서다. 본인이 오이지를 정말 좋아하는데 부인이 오이지를 잘 담그지 못해서 친구네 오이지를 얻어먹는다는 얘기를 적나라하게 썼다. 오이지 담그는 방법까지 물어서 자세하게 적어 놓았다. 오이지는 오이와 물과 소금이 재료의 전부이다. 여기에 시간만 가미되면 훌륭한 오이지가 만들어진다고 김훈 작가가 말한다. 나도 오이지 같은 단순한 글을 쓰고 싶다.
“오이지를 먹을 때. 나는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지는 삶을 생각한다.
오이지를 먹을 때, 나는 다가오는 시간과 지나간 시간이 생명 속에서 이어지는 경이를 생각한다....
무말랭이는 햇볕을 말려서 먹는 반찬이고 오이지는 시간을 절여서 먹는 반찬이다.
그 반찬 속에서 삶의 미립자들은 반짝인다.”
-김 훈 <연필로 쓰기> 240쪽
오이지 같은 글을 쓰고 싶다면서 김훈 작가를 인용한 것은 나의 잘못이다. 첫사랑 같은 그를 잊어야만 앞으로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트로트 가사가 오이지 같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수준에 맞는 트로트 가사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 멀리 떠나간 내 사랑은
기약조차 없는데
애가 타도록
그 누가 울어 울어
검은 눈을 적시나....
-전우 작사, 나규호 작곡, 원곡 배호
“누가 울어”
멀리 가버린 내 사랑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글을 쓰다보니 크리스마스가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