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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라이프 Mar 03. 2021

[쿠팡Ep4] 급변과 급성장하는 회사. 답답한나.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 제 커리어의 주요 순간을 담아 정성껏 쓰려합니다. (쿠팡, 카카오, 블랭크, 스타트업 창업 등)

- 제 글로써 여러분들이 즐겁거나 뭔가 얻어가시는 게 있다면 대환영입니다.

- 현재 진행형인 제 스타트업 이야기도 글을 통해 차근차근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쿠팡 사람들은 언제 자요?

입사 2주 정도 되었을 때 대표님과의 큰일을 겪고 난 후 (3편을 참고해주세요)

더 정신 차리고 일하자라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고 더 연구해서 나만의 실력을 올리자라고 생각했다.

실력을 채우는 데는 감이라는 게 와야 하는 데 그것을 갖기까지는 시간은 어쩔 수 없이 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생각 없이 매일매일 오전 9시 ~ 오전 2시를 쿠팡이라는 한 곳에다가 온전히 힘을 더 쏟았다.

다른 부서 분들도 동지애(?)가 느껴질 정도로 자기 일을 하다 보면 그 정도의 시간을 쏟기 마련이었다.


그때는 야근비가 따로 나오는 것은 아니었고, 야근식대 및 야근 교통비가 지원되는 정도였다.

목표는 오직 하나. 밀리면 한없이 밀린다라고 생각하고, 소셜커머스 업계  확실한 1등이 되어야 했기에 그렇게 다들 프로스포츠팀처럼 움직인 것 같다.


김범석 대표님은 생활패턴이 기본 오전 8시 출근해서 오전 4시정도에 퇴근이었다. 그리고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내가 있는 팀의 바로 옆이 유리 칸막이로 된 대표실이었기에 다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00시에는 새로운 딜이 올라오는 것을 체크한 후 나머지 시간은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을 공부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외부 미팅 때 듣는 말은

"쿠팡 사람들은 대체 언제 자요?"였다.

대학원이라 생각하자

나는 처음에 입사할 때 오로지

'이 세계를 얼른 경험하고 싶다!'였다.

연봉이라는 것에 세금이 있는지도 몰랐다.

연봉 2400만 원이면 그냥 월 200만 원을 받는 줄 알았다.


내 초봉은 당시 2200만 원이었다.

세금을 떼고 온전히 내 월급통장에 들어오는 건 165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친한 동료가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두연아, 너 시급으로 하면 비타 500 값 나오니?"

가끔 말할 때도 있었다. 웃픈 현실 이긴 했다.


어느 순간부터 '연봉'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오면서 일이 잘 안되었다.

시간은 가는 데 자꾸만 다른 쪽으로 생각이 샌다.

뭔가 마음을 다잡을 방법이 필요했다.

스쳐 지나간 건 '대학원'이라는 단어.

'그래, 난 딱 2년 모든 것을 여기에 바쳐 내가 생각한 것을 증명하고자 온 거야. 돈 때문이 아니야.'

'일로써 증명하자. 쿠팡을 대학원이라 생각하자'


매월 나오는 월급은 장학금.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 건 리포트.

대표님은 총장님.

밤을 새워서 일하거나 주말에 나와서 일하는 건 논문을 쓴다라고 생각.

이직하는 것은 다른 곳에 편입하는 것.

.

.

이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했더니 답은 간단했다.


아, 하나 더 생겼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사택은 대학의 기숙사.

쿠팡에 새로 오신 울산 출신의 세일즈 지역단장님께서 회사에서 임시로 주거를 지원받으실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광주에서 올라온 정두연이라고 있다면서요. 그 마도 뭐 같이 살지 뭐"

이렇게 HR팀에 말씀을 주셔서 옥탑방 생활을 청산하고
나도 덩달아 잠실새내역 근처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정말 하늘에 감사할 일이었다.


'그래 일만 잘하면 되겠다'

소셜커머스가 쇼핑을?

쿠팡의 초기 모델은 로컬 음식점, 서비스 등을 싼 값에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파는 소셜커머스였다.

왜 생겼는지의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2011년 3월쯤이었나 '배송'이라는 탭이 사이트에 생겼다.

그게 지금의 쿠팡 쇼핑의 시작이었다.

그때는 어떤 테스트겠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쿠폰을 파는 사이트에 배송을 어떻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니까.

근데 배송이라는 탭에 매번 딜을 오픈하자마자 대박이 났었다.


어떤 상품이 올라오건 단시간에 Soldout 되었다.

그 즉시 쿠팡은 즉각 쇼핑 1, 쇼핑 2 이런 식으로 배송 관련 탭을 늘려갔다.

쇼핑과 관련된 딜은 늘 Soldout이 되었다.

데이터가 계속 증명해 나갔다. 소셜커머스의 넥스트로 쇼핑으로 갈 수 있다고.


그래서 점점 MD(merchandiser)라는 직군의 사람들이 쇼핑 파트로 입사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규모가 커졌다. 회사는 작은데 사람 채용 속도가 너무 빨라서 책상도 부족할 판이었고, 회의실은 늘 꽉 차있었다.

그러다가 11년 6월쯤 역삼역 바로 근처의 큰 빌딩으로 회사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회사가 이사를 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테헤란로가 나에겐 너무 신기해서 GFC(강남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사진도 찍고 했었다.


'배송'이라는 탭이 생겼다 (두 번째 줄 왼쪽)

회사 변화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그 흐름에 맞춰서 온라인 쇼핑 공부를 하면서 실무로 익혀야 했고,

모든 사람이 굉장히 낯설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익혀야 했었다. 그래야 시장에서 살아남으니까.


2011년 9월, 쿠팡 내부에 S급 모델로 대대적인 쇼핑광고에 나선다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10월 정도에 촬영을 완료한 CF가 쿠팡 직원들에게 선공개가 되었는데.

정지훈(비)과 김태희가 나온 CF 였다. 11월부터 매체에 공개가 된단다.
이제는 확실한 격차를 보여주겠노라고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꿈을 꾸고 있나 싶었다.

광고 촬영 때 두 분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러닝머신 위의 나

매일 오전부터 새벽까지 늘 바쁘게 일하고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항상 바쁠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소셜커머스에서 쇼핑으로 점차 바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일은 점차 더 늘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팀들도 속속 생겨났고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들어왔었다.

무언가 회사는 급진적으로 앞으로 나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나 스스로는 뭔가 허전함과 답답함이 점점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쉴 새 없이 해야 했기 때문에 쏟아지는 다양한 일들을 하지만

그때그때 쳐내는 일이 많았다.

제너럴리스트.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그 반대는 스페셜리스트다.

무튼. 좋은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어떤 업무를 지속적으로 파고들면서 성장시키는 일을 해봤나? - 아직'

'내가 지금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나 - 글쎄'

'그렇다고 다른 대안은 있나? - 없다'


러닝머신 위에서 속도를 높여 빠르게 뛰지만 제자리인 것처럼 너무 답답했다.


이런 고민을 어렵사리 같이 사는 울산 출신의 세일즈 지역단장님께 털어놨다.

너무나도 쿨하게 말씀 주시길,

"알았다. 몬 소린지 알겠다. 일단 기다려봐라"

2011년 11월 초 정도였을까, 그분께서 따로 보자고 하시면서 말씀을 주셨다.


"두연아, 내가 12월 즈음에 신규사업팀을 하나 꾸릴 건데 너 올래?"

내 대답은 당연히 "네!"였다.


5편에서 계속!...

좋아요 눌렀냐옹 (이미지 협찬: 이영남 & 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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