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어 읽는 법만 배운 상태로 내던져진 실전!
한국학교와 국제학교 중 고민했지만, 한국학교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국제학교는 학비가 입 떡 벌어지게 비쌌다.
고민이 깊어가는 와중, 같은 동네에 살던 또래 한국인 형제가 다니는 베트남 로컬 사립학교를 소개받았다.
당시 동네의 한국 또래들은 대부분 로컬에서 부딪히며 자라서 베트남어를 정말 잘했다. 그들은 나에게 좋은 목표이자 자극이 되었기에, 그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를 선택했다.
공립학교는 외국인 학생을 거의 받아 주지 않는다. 베트남어를 굉장히 잘하거나,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 이상 입학할 수가 없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더욱 어려웠다.
그 로컬 사립학교는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있었으며 전교생은 대충 천여 명 가까이 되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입학했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는데, 청강생으로 학비를 내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대신 졸업증은 받을 수 없기에 시험을 봐도 점수가 반영되지 않았고, 그랬기에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정말 오롯이 베트남어를 빠르게 배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빠가 오빠와 나를 데리고 입학상담을 받으러 갔다. 마침 월요일 오전 조회를 위해 전교생이 1층 넓은 홀에 모여있었다. 수백, 아니 천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목욕탕 의자를 두고 앉아있었고,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여학생들은 모두 흰색 아오자이를 입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이질적인 모습을 보며 학생들 사이를 가로질러 걸어갈 때 우리에게 꽂히던 시선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전교생으로부터 부담스럽게 쏟아지는 관심에 어지러울 정도로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 학교에는 이미 다니고 있던 한국인 형제가 있었지만, 아마 유일했던 한국인 여자애인 나는 그들에게 또 다른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남매가 학교에 들어가니, 뒤 이어 또 다른 한국인 형제가 따라 입학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총 6명의 한국인이 같이 베트남 로컬 사립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 시절, 내가 아는 바로는 모든 베트남 공립학교의 교복은 흰 와이셔츠에 남색 혹은 검은색 바지와 치마였기에 시장에서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옷을 사 입으면 되었다.
하지만 내가 간 사립학교는 달랐다. 학교에서 지정한 교복을 학교에서 살 수 있었다. 청록색 치마와 바지가 교복이었고, 상의인 흰색 반팔 셔츠에는 청록색 리본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초록도 민트도 아닌 청록색은 다소 파격적이라고 느껴졌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여서, 학생들은 와이셔츠 위로 붉은 스카프를 둘렀다. Khan Qung Do라고 불리는 이 붉은 스카프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매고, 고등학교생부터는 매지 않는다. 나와 다른 한국인 친구들은 외국인이여서 매지 않았다.
교과서는 서점인 Nha Sach 혹은 Fahasa 같은 곳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큰 마트에 있는 서점에 가서 교과서를 사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학년 별로 전 과목 교과서가 하나로 비닐포장되어 묶인 채로 팔고 있었다. 잡지가 떠오르는 질감의 커버와, 한국 초등학교 가정통신문만큼 이나 얇은 내지가, 겉에 크게 쓰인 낯선 언어를 더 낯설게 만들었다.
교과서에 씌울 비닐커버와 공책 그리고 책 위에 붙일 이름표 스티커도 샀다. 베트남 학교에서 쓰는 공책은 모눈종이처럼 복잡한 선들이 가득했다. 난 이미 이 수많은 선들 위에 어떻게 글자를 쓰는지는 과외를 하면서 배웠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자신 있던 필기(따라 쓰기)는 나에게 가장 큰 복병이었다. 수업은 대부분 선생님들이 칠판에 가득 적어주는 내용들을 학생들이 그대로 공책에 따라 적으며, 수업을 듣는 형식이었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주는 내용을 열심히 따라 쓰려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알파벳이 아닌 구불구불한 낯선 모양들이었다.
베트남어는 분명히 알파벳을 쓰는 언어로 알았지만 칠판 위에 선생님이 적어내는 글자들은 난생 처음 보는 곡선을 그리며 써내려 졌다. 꾸불꾸불한 알파벳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따라 적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베트남은 초등학교부터 알파벳을 배울 때 필기체로 배운다. 영어권 나라들에서도 나라마다 보편적인 필기체가 존재하듯이, 베트남어는 구부러지고 둥근 곡선이 많이 들어간 필기체가 일반적이다. 계속해서 따라 적다 보니, 뜻을 몰라도 대략 베트남어가 어떤 식으로 글자들이 조합되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베트남은 학교에서도 연필이나 샤프를 쓰지 않는다. 모든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파란색 볼펜으로 필기하며, 시험을 본다. 공책에 필기할 때는 자유롭게 다양한 색의 볼펜을 보조로 사용해도 되지만, 파란색 볼펜은 모든 학생에게 기본 필기구였다. 틀리면 수정 테이프로 수정한다.
줄줄이 입학한 한국 학생들은 베트남어가 아직 능숙하지 않았기에 실제 나이보다 1-2살 어린 학년으로 반이 배정되었다. 당시 14살이 막 되었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Lớp 6 - 6th grade)로 배정되었다. 위에 말했던 이미 다니고 있는 한국인 동갑친구랑 같은 반에 들어갔기에 도움을 받으며 수월하게 반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6학년 아이들은 외관으로 보면, 한국의 초등학생 4학년 정도로 보일 만큼 작았고 앳돼 보였다. 정말 순수했고, 착했다. 나를 구경하러 몰려와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우던 다른 학년 학생들과는 다르게 착하고 친절하게 내가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친구들의 맑고 또랑또랑하던 눈동자는 아직도 기억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착한 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나와는 다르게, 7학년으로 배정되었던 오빠는 더 난이도 높은 학교생활을 했었는데, 우리가 겪었던 문제점과 갈등은 다음 편에 이어서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