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발적인 백수인가 비 자발적인 백수인가
Nothing is more expensive than a missed opportunity.
- H.Jackson Brown, Jr.
"놓친 기회보다 비싼 것은 없다"
태국으로 가기 전,
국내에서 정리해야 할 업무는 굉장히 많았는데
그중 물론 1순위는 다니던 직장에서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떠나는 것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곳은 글로벌 금융사로
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뉴욕 본부를 포함한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지사의 동료들과도
꽤 친해질 수 있었다.
큰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대화도 많이 하고 도움을 항상 받던 터라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내 소식과 함께 굿-바이 이메일을 하나씩 보내던 차였다.
"Are you interested in working at Bangkok branch?"
"방콕 지사에서 일해보지 않을래?"
날 좋게 봐주신 외국인 임원에게서 온 이메일이었다.
여러 걱정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인정을 받았다는 뿌듯함과 새로운 업무 환경에 대한 기대가 훨씬 컸다.
"I would love to!"
"좋아요!"
그렇게 시작된 이메일을 바탕으로,
태국에 도착한 지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자가격리 2주 +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 수 주)
태국 지사의 본부장과 면담이 잡혔다.
면접이 아닌 면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미 윗 선에서 채용 결정이 끝난 뒤라 당일에는 내가 해야 할 업무 범위를 설명 듣고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연봉 이야기가 꽃피웠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라고 하더라도 태국의 전체적인 경제 규모*와 물가 수준을 고려했을 때,
한국에서와 같은 급여를 받기란 어려웠다.
*1인당 GDP: 한국 USD 34,866 vs. 태국 USD 7,702 (국제통화기금, 2021년 4월 기준)
그렇다고, 무작정 태국 사정에 맞출 수도 없었다.
세금 전후까지 따지며 정해진 급여는 10여 년 전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받았던 액수와 비슷했다.
하지만 현지인들과 비교했을 때는 매우 높은 금액이었고,
내가 태국어를 전혀 못한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는 (물론 업무는 영어로 진행되나) 감사한 금액이었다.
원래 한 없이 낙천적인 성격을 보유한 나는 결정된 금액에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왔고,
부인의 실력을 한 없이 높게(?) 평가한 듯한 남편은 좀 실망한 기색이었다.
이제 남은 건 취업 관련 서류 작업을 끝내고 업무 시작일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서류 작업에서 제일 번거로운 일은 내 비자를 가족동반비자에서 취업비자로 바꾸는 것이었는데,
간단히 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다시 돌아가 비자 종류를 바꿔와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로 인해 국경을 폐쇄하여 하늘 길이 꽉 막힌 시기였다.
그래도 나와 태국 지사 본부장은,
조금만 지나면 곧 열릴 것 같은 하늘 길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수개월을,
그렇게 수개월을 마냥 기다렸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한 해로 대변되는 2020년이 끝나기 3주 전,
희망을 잃고, 기다림에 지치고, 관련된 이들에게 계속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나는 결국 백기를 흔들며 새로운 직장이 될 뻔한 태국 지사에 입사 포기를 통지했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 파동으로 인해
자발적인,
아니 비 자발적인,
아니 사실 자발 및 비 자발적인 성격을 모두 포함한 백수가 되었다.
"놓친 기회보다 비싼 것은 없다"
이 인용구의 숨은 뜻은, 고민하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고
바로 실천하여 결과물을 얻으라는 것이다.
실천에 달린 문제는 비록 아니었다고 해도
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또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달했으나
자발/비자발적 백수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