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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오 Apr 24. 2023

우울증이 감기 같다는 걸 알면서도

봄에 찾아온 감기

우울증 치료를 할 때 나를 위로하면서도 때로는 나를 지독한 고통으로 밀어 넣었던 말이 있다. 바로 "우울증은 감기와 같다"는 말이다.


우울증은 감기와 같아요.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언제든 또 찾아올 수 있어요.
그리고 치료만 잘하면 자연스럽게 지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니 켈리씨, 너무 심각하게 생각 말고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아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지나갈 겁니다.


하루는 이 말이 너무나도 위로가 됐다. "그래 우울증은 감기와 같은 거구나. 난 지금 감기에 걸린 거니, 치료 잘 받고 약도 먹으면 몸이 제 컨디션을 찾아가겠지. 빨리 감기가 다 나으면 좋겠다!"



이렇게 희망에 차 있다가도 어느 날은 "우울증이 감기라고? 그럼 이렇게 돈 쓰고 시간 쓰고, 정신과에서 열심히 치료받고 나가도 살면서 언젠가는 또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거 아냐? 하,,, 뭐야 그럼 이 짓을 또 반복해야 되는 건가? 평생? 나 이러다 평생 정신과만 다니는 거 아냐...?"



감정기복이 말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던 때였다. 가장 힘들었던 건 '왜 나는 낫지 않는 거지', '감기가 왜 이렇게 오래가지', '다음에 또 우울증이 오면 어떡하지?'와 같은 것들이었다. 정말 걱정은 걱정을 부른다더니.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을 쏟으며 치료를 스스로 방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3년 전에 했던 그 우려가. 23년에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감기인 건가..?


부정적인 생각이 하루를 좀 먹더니 일상을 지배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본디 생각이 많고 해맑은 댕댕이 같은 성격이 아니라 항상 나를 경계해 왔건만. 결국 또 이렇게 되는 건가... 왜 하필 또 봄인 건가...



그러다 문득 3년 전과 내가 다른 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땐 번아웃이 올 정도로 매일 새벽부터 주말까지 일했고, 매일 부정적인 사건사고와 마주해야 했다. 나를 돌볼 틈 없이 매일 술자리에 가야 했고, 가족들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 생전 처음 사는 이 지방으로 내려왔지만 일에 치여 가족들과 제대로 시간을 갖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출근을 하지 않는다. 힘들면 오늘은 그냥 쉬면 된다. 그리고 술은 날이 좋거나 캠핑을 갈 때만 마신다. 혼술은 이제 딱히 흥미가 사라져 친구들과 한 달에 한두 번 마시는 것이 전부다. 3년 전에는 없었던 금쪽같은 조카 2명이 생겨 거의 매주 조카들을 보러 본가로 내려간다. 부모님께 "우리 너무 자주 보는 거 아냐..?"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나는 조카 핑계로 부모님도 자주 보게 됐다.



그래, 그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그리고 내게는 힘들 때마다 나를 버티게 해 준 '선생님의 말'들이 있었다. 힘들 때마다 상담을 받았을 때 들었던 말들을 곱씹고는 한다. 메모장에 적어둔 것도 아닌데 그 말이 나를 살리는 말이라는 걸 알았는지, 아니면 내게 너무나도 필요했던 말이었는지 상담받을 때 들었던 솔루션들은 3년이 지나도 여전히 선명하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하나둘씩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땐 감사일기 혹은 일기를 쓰라고 하셨다. 매번 시도는 하지만 사실 한 달 이상 써본 적이 없다. 내 일기는 1달, 2주, 3주 등의 파편적인 기억의 기록들이 모여 겨우 1년이 되곤 한다.



그래서 이렇게 바닐라 라떼를 찾는 여정을 글로 쓰기로 했다. 꽤 일기 같고 상담일지 같은 이 공간이 나는 너무 좋다. 우울증이라는 감기가 오기 전 목이 따끔따끔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차를 마시며 브런치 글을 쓰니 약간씩 면역력이 올라와 감기가 더디 오는 듯한 느낌이다.



분명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치료를 받는 분들은 그 과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터널을 걷는 기분일 테다. 나 역시 그랬으니깐.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제 알 것 같다. 정말 우울증은 감기였구나. 그리고 분명 살면서 언젠가는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난 이제 감기에 나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감기는 예방이 전부라고 하지 않나.


우울증이 감기같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쌀쌀하게 입고 다닌 건 아닌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우울증이 감기같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 우울증이 감기같다는 걸 알기에 오늘은 따뜻한 레몬차를 마시고 이른 잠을 자야겠다. 그럼 언제 으슬으슬했냐는 듯 다시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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