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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오 Apr 28. 2023

글을 읽지 못하는 기자

난독증과 우울증의 상관관계

글을 잘 못 읽겠어요

요즘 고민을 물었을 때 내가 상담사 선생님께 했던 말이다. 기사를 못 읽는 기자라니. 사실 기사 하나를 읽는 것은 그나마 쉬운 편에 속했다. 기사 하나를 작성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판결문, 성명서, 헌법 조항 등 더 촘촘하고 빽빽한 글들이 많았다.


한번 읽으면 머리에 촤라락 정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두 줄 읽다 금방 딴생각이 든다. 딴생각을 했다는 자각도 못 들 정도로 그냥 책 자체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다시 첫 줄로 돌아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그 글자들을 욱여넣으려고 글자와 씨름을 하기 일쑤였다. 그저 일이 하기 싫어서였겠거니 했다. 사는 것조차 귀찮았을 때니깐. 


매일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글을 읽고 쓰니, 책은 굳이 참고용 말고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집에 들어가면 쓰러져 자는 것이 일과여서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다는 것이 핑계 기는 했다.


그런데 매일 집에 들어와 머리만 대면 자고 나가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는데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하루 일에 불려 다니기만 했지, 나를 위해 한 일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날부터 자기 전에 누워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곤욕이었다. 글 읽는 것도 어쩌면 일의 한 부분이었는데, 내가 이리도 책을 못 읽는 사람이었나. 어려운 글도 아닌데 머리에 글이 들어오지 않아 첫 장을 십여 분동 안 붙들고 있었다. 머리가 선명하고 맑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뿌옇게 끼여있어 제대로 사고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울증을 겪으면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글을 읽는 것이 직업이었지만, 글을 잘 읽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일이 더 되지 않았고, 일이 되지 않으니 또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글이 더 읽히지 않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었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자각을 못할 정도로 책 내용을 하나도 파악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는데도 그냥 읽었다. 그래야 오늘 하루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 잠이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루 단 5분, 10분이라도 누워서 책을 읽고 잠이 드는 것이 습관이 되자, '나를 위해 자기 전에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졌다. 


그날 이후로 매일 자기 전 단 2분이라도 책을 읽었고, 책 읽는 것이 습관이 됐다.


정말 웃긴 사실이지만, 나는 앉아서 책을 잘 읽지 못한다. 가장 마음 편한 독서 상태가 아니라 집중이 안된다고 할까? 어두운 방에서, 자기 전, 이북리더기로, 누워서 읽어야 비로소 책이 잘 읽혔다. 그래서 주말 낮조차 책을 읽을라치면 침대로 가 누워서 읽는다ㅎ 습관의 무서움이다.


아무튼 나는 난독증인지 뭔지 같은 지독히 신경 쓰이는 증세가 나아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최근 글 읽는 것이 너무 어려워지자 다시 글을 읽고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마음이 편해지는데 책을 읽지 못하니 마음이 불안한 날이 이어졌다. 근데 마음이 불안하니 책이 눈에 더 들어오지 않았다. 그 악순환의 데자뷔였다.


요즘은 그래서 오디오북을 찬찬히 들으면서 흥미 있는 글을 접하기 시작했다. '휴남동 서점', '불편한 편의점', '수상한 목욕탕' 등 소설을 읽으면서 책을 읽고 싶게 만든 다음 찬찬히 글을 다시 읽고 있다. 머릿속 뿌연 안개가 걷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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