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타미준 투어' 편
중학교 3학년들의 인생 최대의 도전인 '고등학교 입시'가 끝나고 나면, 평가에 얽매이지 않는 수업이 가능해진다. 나는 이때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찾아가는 미술관교육을 신청한다. 굉장히 양질의 교구를 학교에 보내주는데,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어떤 한 학생은 나랑 같이 한 수업 중에 제일 좋았던 수업이 뭐냐는 질문에 찾아가는 미술관 교육을 뽑기도 했었다. 그렇게 그 해도 역시 찾아가는 미술관교육을 신청하고, 며칠 후 묵직한 상자들을 받을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보니 '이타미준'이라는 이름이 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이타미준? 무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에서 해외 작가를 가르치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신청은 했으니 가르치긴 해야 지란 마음으로 이타미준을 공부하며 내 얼굴은 점점 붉어져만 갔다. 일본 취업과 일본의 권위 있는 상을 받을 기회를 받기 쉬워질 수 있음에도 귀화를 택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재일 교포 작가. 이 날의 낯 뜨겁던 기억은 나에게 꽤 오래 남아 2023년 2월 겁도 없이 홀로 제주 '이타미준 투어'를 떠나게 만들었다.
내가 직접 설계한 제주 '이타미준 투어'는 '유동룡 미술관 - 방주 교회 - 수풍석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유동룡 미술관은 2022년 12월에 완공되어 개관한 곳이다. 해당 미술관은 네이버로 예약을 받고 있고 당일에 표가 남으면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나는 오전 9시 시간대로 사전 예약을 한 뒤 방문했다.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완만한 곡선의 지붕에 원기둥 형태가 볼록 튀어나와 서 있는 유동룡 미술관과 다르게 1층 내부는 다소 어두운 색상의 소재를 써서 다른 공간에 들어온 듯했다. 그리고 왼쪽으로 보이는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 공간의 분위기를 있는 힘껏 느끼며 데스크로 가서 사전 예약된 것을 확인하고 짐을 맡긴 뒤 2층 전시실로 향했다. 2층에 올라가면 "만일 건축에서 완벽함 만을 추구한다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기능을 다듬어진, 차갑고 무미건조한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라는 문장이 가장 먼저 보인다. 어쩐지 그 문장을 보고 내 마음속 어딘가에 묵직한 북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살면서 완벽주의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실제로 나는 뭔가 잘 풀리지 않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100명이 있으면 1명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자꾸 마음에 걸리고, 전체적인 퀄리티가 높아도 1개의 오타가 자꾸만 눈에 밟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되도않는 완벽을 추구하는 나는 어쩐지 서글픈 어른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빠지고 있던 날들이었다. 그런 오묘한 마음으로 2층 전시실을 둘러보니 맨 처음 문장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따뜻한 온기와 지역의 주변 공간과 어우러지는 건물을 만들고 싶어 했던 한 재일교포의 따뜻한 건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관람을 마친 뒤로는 1층 티 라운지에서 입장권에 포함된 차와 말차 초콜릿을 먹으며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타미준이 살아생전 무엇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유동룡 미술관과 조금 멀리 떨어진 방주 교회는 제주에 있는 이타미준 건축물 중에 제일 유명한 곳이다. 이타미준을 알기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을 자주 보았기에 이타미준은 몰라도 방주 교회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는 사람들에게 분노한 하느님이 홍수를 내리기 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방주에 태워 인류에게 또 다른 희망을 주었다는 일화로 기독교가 아닌 사람들도 한 번쯤은 어디선가 들어봤을 이야기일 거다.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봤던지라 그리 놀랍지 않겠지라는 마음으로 도착한 방주의 교회는 역시 건축물은 사진이 아니라 직접 가 봐야 한다는 나의 지론에 확고한 뒷받침을 해주었다. 얕은 물 웅덩이 안에 있는 방주 교회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건물의 중앙의 약간 위로 가로로 긴 통로가 나 있어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형태의 모양을 의도해 보였다. 그리고 자칫 단조롭고 뻔할 수 있는 지붕선에 변화를 주어 V 모양이 되어있었고, 삼각형의 여러 무늬가 기하학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주로 인스타그램에 방주교회의 외관이 올라오는데 하이라이트는 내부에 있었다. 관람객에게 허용된 예배당에 들어가 보면 아랫부분에 물이 보여 물에 갇힌 채 예배를 드리는 느낌을 주며, 노아의 방주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방주의 교회가 언제든 쉽게 볼 수 있다면 수풍석 박물관은 사전에 예약을 해야만 방문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수풍석 박물관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내부 안에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비오토피아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손님들도 볼 수 있던 공간을 거주 주민들이 땅을 매입하며 방문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대신 예약을 받고 해설사의 설명 아래 공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약에 성공한다면 약속 장소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석-풍-수 순서대로 관람을 시작하게 된다. 관람은 기대 이상이었는데, 가장 나의 마음에 다가온 것은 풍 박물관이었다. 셔틀버스가 풍 박물관쯤에 멈춰 섰을 때 본능적으로 박물관 옆에 길다라게 자란 갈대와 우람한 나무까지가 풍 박물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해당 조형 작품은 검은 나무 사이사이에 빈 공간을 둔 채로 지어진 건물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날이면 검은 나무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짐작됐다. 하지만 내가 간 날은 날씨가 좋은 날이 아니라 바람도 해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날씨 좋은 날에 다시 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칠 무렵 해설사가 여러 날씨와 계절에 따른 풍 박물관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하길 어느 특정 날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과 어우러지는 그 모습 그대로가 하나의 풍 박물관의 모습이라고. 그래, 그냥 이 날씨와 계절을 느끼면 되는 것이었다. 이타미준이 말한 완벽의 미를 버리고 시간이라고 하는 흐름 속에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