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ra 도시에서 일어나는 울고 웃는 이야기입니다.
# 인이: 인도이야기의 줄임말. 다음(daum) 포털사이트에 인이를 검색하면 글이 나옵니다.
‘따르르릉. 아!! 늦었다’
따지 마할의 일출을 보기 위해 5시에 알람을 맞췄는데 아침 8시에 일어났다.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고 길거리는 경적소리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경적소리를 들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오토바이 뒤에 앉아 등교를 하고 있었다. 날씨는 뜨거웠고 습했다. 길가에 있는 강아지들은 맥없이 자고 있었고, 큰 나무 주변에는 새들과 원숭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야생 동물원의 느낌을 만들었다.
지도를 따라 30분 정도 걸으니 따지 마할 매표소에 도착했다. 지갑을 꺼내며 입장료를 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 인도 사람들에게는 40루피(약 800원)를 받았지만 여행객들에게는 1000루피 (약 2만 원)였다. 가격은 마치 ‘네가 아그라까지 왔는데 고작 2만 원을 투자 안 하겠어?’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티켓을 구매했다.
다행히 따지 마할 입구에는 사람들이 없어서 빠르게 티켓 검사와 몸수색을 마쳤다. 그 후 가방을 트레일러에 올렸고 가방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경찰관 들은 내 가방이 지나가자 서로 심각하게 이야기하며 나에게 손짓을 했다. 순간 숨이 멎었고 가슴이 뛰었다. 그중 한 경찰관은 노트북 반입이 안된다며 보관함에 맡기고 오라고 했다. 노트북 가방만은 맡길 수가 없었다. 노트북 가방 안엔 여행 전재산 80 만원과 여권, 비행기 티켓을 포함한 모든 서류뭉치 들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고민 끝에 설마 없어지진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보관함에 가방을 맡기기로 했다.
가방을 맡기고 다시 따지 마할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아까와 달리 중학생으로 보이는 수많은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도 따라 학생들 뒤에 섰다. 인도 사람들과 생긴 게 다르지만 입장할 때는 나도 인도 학생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왼쪽으로 이동하면 나도 같이 움직였고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같이 오른쪽으로 따라 움직였다. 계속 같이 움직이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다 여학생들이었다. 앞에 있는 표지판엔 “This line for girls”라고 적혀있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민망한 순간이었다. 어쩐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긴 했는데 난 눈치를 채지는 못했다. 바로 반대편에 있는 남자 줄로 두리번거리며 가는데 티켓 검사관이 나를 불렀다. 내가 애초로웠는지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특별하게 기다리지도 않고, 입구가 아닌 출구로 들어갔다.
아까와 같이 몸수색을 받기 위해 발판 위에 섰다. 아까 몸수색을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었다. 다리와 팔을 살짝 벌리고 서 있는데 인도 경찰은 아까와 다르게 겨드랑이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종아리까지 훑었다. 그리고는 손이 허벅지 사이로 들어왔다. 경찰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 왔어?”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화난 얼굴을 지으며 한국말로 “이 새끼 XXXX”라고 말했다. 그러자 경찰은 당황한 듯 내 몸에서 손을 떼더니 가라고 했다. 난 인도경찰이 내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쳐다봤다. 경찰은 내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의 몸 검사를 했다.
찝찝한 마음을 가다듬고 따지 마할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여행객들은 이미 일출을 보고 난 후 돌아오는 길이었다. 일출을 못 본 게 약간은 아쉬웠지만 따지 마할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5분 정도 걸으니 중앙문이 나왔다. 중앙문 안을 보니 따지 마할이 사이즈에 맞게 딱 보였다. 중앙문 사이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고 따지 마할 뒤에는 후광이 비쳤다. 마치 만화에서 엄청난 물건을 발견했을 때 머리가 휘날리면서 물건에서 빛이 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중앙문을 통해 부는 바람과 따지 마할의 아름다움에 난 가슴이 뭉클했고 코끝이 찡했다. 아름다움에 반해 멍하니 서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따지 마할을 더 가까이 보고 싶었다. 신발에 천을 깔고 따지 마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어두컴컴했고 오로지 태양만이 따지 마할의 안을 밝혔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따지 마할 안에는 두 개의 관이 나란히 있었고 관 주변을 돌며 관을 관찰할 수 있게 길을 만들어놨다. 모든 조각이 섬세하고 작은 것 하나까지도 신경 쓰임이 돋보였다.
따지 마할을 나와 뒤쪽으로 가니 강물이 흐르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인도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또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아이들은 강바람을 맞으며 뛰어놀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구석진 자리에는 커플들이 앉아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사랑스러운 눈빛을 교환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니 나 또한 행복해지며 마음이 따듯해졌다. 따지 마할은 인도 사람들에게 무덤의 의미를 넘어 행복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따지 마할에서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거실에 앉아 다음 일정을 보고 있는데, 다음 지역으로 갈 바라나시행 기차가 심각하게 딜레이 되고 있다고 글이 올라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게스트하우스 사장 '아쉼' 에게 티켓을 확인해달라고 했다.
아쉼은 인터넷과 핸드폰과 뒤적뒤적 거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축하해! 오늘 여기서 한 번 더 잘 수 있는 특권이 생겼어, 기차가 오늘 오지 않아”
“뭐라고?? 진짜?? 믿을 수가 없어, 어제 분명 매표소 직원이 오늘 20:30분까지 기차역에 오라고 했어. 어떻게 된 거야?”
“모니터 봐봐 모니터에 모든 기차가 취소됐다고 나오잖아”
나는 아쉼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139 (인도 기차 회사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고 1분 안에 전화를 끊었다. 도저히 인도식 영어 발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고 끊고를 반복하자 아쉼이 답답했는지 수화기를 뺏더니 직접 상담사와 대화를 했다. 아쉼은 전화를 끊고는 자신 있게 “오늘 기차 취소됐어”라고 말했다. 오늘 바라나시로 넘어가려는 계획이 완전히 꼬여버렸다. 망연자실하며 앉아있는데 아쉼은 마지막 해결방법이 있다며 바라나시행 버스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가격은 기차보다 2배 비쌌지만 버스 자랑에 넘어간 나는 예약 수수료 150루피 (약 3천 원)와 버스비 1370루피 (27400원)을 내고 버스 티켓을 샀다. 버스 티켓을 사자마자 아쉼은 어제산 기차 티켓을 환불하라고 했고, 바로 툭툭을 잡고 아그라 기차역으로 향했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아그라 매표소 직원에게 기차 티켓 환불하러 왔다고 하니 직원은 왜 취소하냐며 기차가 온다고 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웃었다. 직원은 진지하게 기차가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취소하면 50%만 환불 가능하고 1시간이 지나면 단 1원도 환불이 안된다고 했다. 너무 당황한 마음에 툭툭으로 달려가 숙소로 가자고 말했다. 툭툭 기사가 시동을 걸려는 찰나, 1시간 안에 다시 기차역으로 오지 못할 것 같았다. 다시 기차역으로 달려가 취소를 하기 위해 줄을 섰다. (아쉼의 핸드폰 번호도, 게스트하우스 번호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40분이 남아있었다. 내 앞에는 세 사람이 티켓을 사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계속 빼꼼 내밀고 다리를 떨면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쉼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설마 ‘커미션 150루피를 받으려고 거짓말을 치려는 건가’라는 생각과 ‘나를 재워서 숙박비를 받으려고 하나’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 앞에 한 사람이 남았을 때 나는 창구직원을 쳐다보면서 취소할 준비를 하라며 눈으로 사인을 보냈다. 창구직원은 아무 감정 없는 눈치였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딱 10분 남았었다. 취소 종이를 내밀며 다급한 목소리로 취소해달라고 했다. 창구직원은 의아해하며 기차가 온다며 두세 번 말했지만, 이미 정신줄을 놓은 나는 취소해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창구직원의 질문에 나는 괜찮다고 했고 3분을 남기고 결국 50%인 450루피를 돌려받았다.
툭툭을 타고 숙소로 오는 길에 아쉼에 대한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분명 어제 저녁에 침대에 앉아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나를 이용했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진정되지 않은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밖을 쳐다봤다. 그리곤 운전석 거울을 보다가 우연히 툭툭 기사의 다리를 보았는데 툭툭 기사의 오른쪽 다리가 없었다. 오로지 왼발로만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울로 눈이 마주쳤는데 내 표정이 너무 안 좋았는지 한번 미소를 지어 주었다. 건강한 몸과 조금 한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걸 잊고 여행을 한 내가 창피했다. 툭툭 기사의 미소를 본 후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고, 아쉼의 잘못 보다 내 불찰이 더 크다는 걸 깨달았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후 나는 모든 것을 용서했다. 툭툭을 내리며 난 드라이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포옹을 했다.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가니 아쉼은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옆에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기차 티켓 취소된 게 아니야. 기차 온대”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리 같이 인터넷으로 봤잖아. 다시 139 (인도 기차 상담전화)에 전화해봐, 기차는 여기에 안와 확실하다니까”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아쉼은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며 다시 139에 전화를 했다. 아쉼은 전화를 끊고 다시 말했다.
“오늘 기차 안 온대. 너 지금 창구 직원한테 속은 거야. 원래 100% 환불받아야 하는데 창구 직원이 50% 받아 챙기려고 너한테 거짓말한 거야”
그러면서 말을 이어갔다.
“나는 확실히 장담해. 만약에 여기에 기차가 오면 내가 기차 가격 5배인 4500루피를 너한테 줄게. 창구직원한테 가서 나머지 50% 달라고 말해”
난 어차피 기차 티켓도 취소해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지만 계속되는 아쉼의 설득에 휩쓸려 툭툭에 몸을 싣고 다시 아그라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으로 가는 동안에는 매표소 직원을 의심했다. 이제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인도 여행의 후회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줄을 섰고 내 차례가 되자마자 약간의 흥분된 목소리로 환불금의 50%를 달라고 했다.
창구 직원은 환불된 티켓을 보여주며 딱 한마디를 했다.
“지금 네가 말하는 건 아그라 포트 역이고 내가 말하는 건 아그라 칸트 역이야”
아그라에 아그라 포트 역과 아그라 칸트 역 두 개가 있었다. 기차는 아그라 칸트 역에 오지만 아그라 포트 역에는 오지 않았다. 문제는 아쉼은 계속해서 아그라 포트 역을 확인하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가는데 뒤에 있었던 4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나를 붙잡고 뒤로 끌고 갔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여기 기차역에서 일하고 있고 내가 직접 기차가 오는 걸 보여줄게. 따라와”
아저씨는 나를 인포메이션 센터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인포메이션 직원에게 기차가 오는지 물었고 그 직원은 정확히 20:30분에 기차가 온다고 했다. 이제는 아쉼이 나를 갖고 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마디 했다.
“여기 인도 기차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거야. 뭐하러 여행객들에게 거짓말을 치겠어?”
그 말을 듣고는 줏대 없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지만, 이 지구 상에 나 혼자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이 실망감과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난 울먹이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인도 정말 좋은 나라고 아름다운 나라예요, 하지만 저는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아저씨는 나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며 울먹이는 나에게 등을 다독여줬다.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정말 따듯한 분이었다. 눈물이 나는 와중에도 아저씨의 얼굴을 잊고 싶지 않아서 사진을 찍었다.
다시 화살은 게스트하우스 사장에게 돌아갔다. 50% 환불받은 450루피도 툭툭을 타면서 다 써버렸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과 감정을 소비한 것에 대한 후회감이 들었다. 들어가자마자 4500루피를 달라며 소리쳐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혼자 알아보지도 않고 남을 믿고 움직였으며 나만의 생각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아물기 쉽지가 않았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문 앞에서 아쉼과 마주쳤다. 아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아마 4500루피의 두려움이 약간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난 말했다.
“아그라 칸트에 기차가 온대. 네가 말한 건 아그라 포트고 창구직원이 말한 건 아그라 칸트 야. 네가 잘못 안거야”
“말도 안 돼 우리 인터넷으로 봤잖아, 말도 안 돼”
나는 더 이상 기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체가 싫어서 거실에 혼자 앉아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일본 친구 에고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아쉼의 편을 들더니 나의 잘못이라며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일어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그냥 쳐다보고 말았다. 그리고는 에고는 말을 이어갔다.
“나도 거의 1000 루피 주고 기차 티켓 샀는데 여기 더 있고 싶어서 환불도 안 했어,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사람 심리를 이용한 건지 돈을 못 받았다고 말하니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조금의 위로가 됐다. 우리 셋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고, 난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다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 당시 4500루피를 달라고 장난으로 이야기했다. 아쉼은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농담이라고 한 후 넘겼다. 지금까지도 가끔 연락 오면 장난으로 기차 이야기를 하곤 한다.)
저녁 10시가 되자 나는 바라나시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어났다. 1박 2일 동안이지만 몇 년 동안 같이 지내온 친구같이 너무 가까워졌다. 며칠 더 자고 가라는 아쉼의 제안에도 뿌리치고 가방을 메었다. 막상 문 앞에 서니 오늘 이후로 떠나면 언제 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슬펐다. 하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 후 사진 찍고 난 후 문 앞에 섰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아그라 도시였다. 아쉼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마디 했다.
“기차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버스에도 문제가 생겨서 다시 돌아오길 바랄게”
나는 받아쳤다.
“그럼 4500루피 준비해둬”
그리고 난 후 우리는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From. Toro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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