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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호 Dec 26. 2017

#2017. 09.19 신고식 후 소중한 인연   인이

핸드폰 개통, 더위를 집어삼킴, 소중한 인연 인도 이야기, 궁금하죠?

# 인이: 인도이야기의 줄임말. 다음(daum) 포털사이트에 인이를 검색하면 글이 나옵니다.


2017-09-19

신고식 끝에 찾아온 소중한 인연


“증명사진은 갖고 왔어요?”

인도 방랑기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침 일찍 헤매면서 인도 방랑기에 도착했지만 증명사진이 없어서 핸드폰 개통할 수 없었다. 아주머니께 사진관 추천을 받고 빠하르 간지로 향했다. 빠하르간지에 도착하니 아무리 찾아도 사진관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진관을 물어봤다. 귀찮다는 듯이 옆 가게를 가리켰다. 옆 가게를 보니 핸드폰 가게였다. 의아해하며 가게 직원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하자, 가게 직원은 자신 있게 “노 프로블럼”을 외쳤다. 5분 정도 기다리자 직원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같이 셀카를 찍으려고 했다. 난 말했다.


“증명사진을 찍고 싶은 거예요, 같이 사진을 찍자는 게 아니에요”


   직원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사진관을 가는 길을 설명해 줬다. 5분 정도 걷자 작고 허름한 사진관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세가 지긋이 든 할아버지가 계셨다. 가격을 물어보니 100루피라고 말했다. 난 분명 인도 방랑기 아주머니한테 50루피라고 들었는데 가격이 2배였다. 난 할아버지께 “50루피라고 듣고 왔어요.”라고 말하자 가격이 바로 60루피까지 내려갔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나라였다. 사진 찍기 전에 협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받자마자 다시 인도 방랑기로 향했다.


*인도 방랑기- 델리에 있는 한인식당. 한국음식을 팔고 동행도 찾을 수 있으며 핸드폰 개통도 할 수 있다.


  개통을 하기 위해서 여권, 증명사진 그리고 700루피를 주자 오후 3시에 다시 오라고 했다. 이따가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호스텔로 다시 돌아오니 오후 12시쯤이었다. 침대에 누워 론리 플래닛을 보고 있는데 방안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청소하는 직원이 들어왔다. 난 보자마자 먼저 인사를 했고 직원은 친절하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직원이 물어봤다.

“너는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어?”

“나는 돈은 많이 벌지 못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

“좋은 생각이야, 나는 외국에서 살고 싶어. 여기서 2년 동안 열심히 돈 모아서 외국으로 갈 거야. 한국은 월급이 얼마나 돼?”

나는 환율을 계산하고 보여주면서 말했다.

“음.. 대부분 사람들이 180만 원 정도 받지, 근데 한국은 물가가 비싸, 너는 얼마나 받아?”

“나는 주 6일 10시간 정도 일해서 한 달에 8000루피 정도 받아”


  환전을 따져 계산을 해보니 핸드폰에 14만 원이 나왔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더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리의 한 달 월급이 인도 사람에게는 약 1년 치의 월급이었다. 똑같은 시간과 일을 하지만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월급이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게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에서 태어난 게 감사하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더 좋은 옷을 사기 위해,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나에게만 지출을 했고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둘러보지 못했다. 인도에 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인도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고 봉사를 하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난 가방을 메고 악수하면서 굳게 믿었다. 돈을 얼마 버느냐 또는 직업의 귀천을 떠나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듯이, 하우스 키퍼는 기회를 기다리며 준비를 해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한 후 호스텔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해는 쨍쨍했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날씨는 많이 더운지 바닥에는 아지랑이가 올라왔다. 뜨거운 햇빛을 맞아가며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말없이 티켓을 사려 줄을 섰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사람들의 눈동자를 따라가다 보면 시선의 끝은 항상 내 바지에서 멈췄다. 어제산 알라딘 바지 (똥 싼 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인도 바지를 입고 다니는 내가 신기하고 웃겼나 보다. 하필 바지 색깔은 알락달록 한 게 무지개 떡을 연상케 했다. 티켓을 사고 나서 지하철 플랫폼으로 갔다.


  지하철 안에서도 내 바지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내 바지를 보고 사진을 찍는 사람부터 옆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 바지 보러 오라는 사람 등등 슬슬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분명 바지를 살 때 인도 사람들이 입는 바지라고 해서 샀는데 인도 사람들은 대부분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숙소에 다시 돌아가 바지를 갈아입고 올까 라는 생각부터 내가 산 바지가 바지가 잠옷인가 라는 생각까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의 신경을 쓰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며 레드포트 역에서 내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레드포트 역에서 내려 지도 켰는데 지도가 먹통이었다. 같은 자리만 세네 번째 맴돌았다. 결국 지나가는 사람에게 레드포트 가는 방향을 물어봤다. 그 남자는 친절하게 따라오라고 말은 했지만 자기 길을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자 뒤를 따라가며 지도를 보는데 남자가 눈 앞에서 사라졌다. 하는 수 없이 상인들에게 물어보며 골목을 빠져나왔는데 엄청 거대한 레드포트가 눈앞에 있었다. 흥분한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만 건너면 바로 레드포트 입구였지만 역시나 횡단보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가고 있는데 저 멀리 레드포트 안에서 경찰관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경찰관이 문을 열더니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갔다. 경찰관은 나를 쳐다보더니 왼쪽으로 가면 티켓 파는 곳이 있다고 했다. 원래 막혀있는 문이지만 나를 위해 문을 열어준 거였다. 어딜 가나 경찰관이 부르면 심장이 벌렁벌렁 하는 건 똑같았다.


  티켓을 사고 오디오 가이드도 빌리고 레드포트 안으로 들어갔다. 오디오를 들으며 집중 좀 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는데 아까부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도 청년 2명이 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순간 약간의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가방을 앞으로 메고 혹시나 모르는 마음에 전투준비를 했다. 그중에 한 명이 내 옆으로 오더니 말을 걸었다.

“오 친구 어느 나라에서 왔어? 무슨 일해?”

“한국에서 왔고, 이거 오디오 좀 들을게”

“들을 필요 없어, 우리가 같이 설명해줄게 걱정하지 마”

“아니야 나 오디오 들으면서 갈게, 괜찮아”

  오디오를 들으면서 혼자 있고 싶었지만 청년 2명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정색하며 괜찮다고 말하자 그중 한 명이 가자면서 그 친구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래도 난 고맙다며 악수를 했고 우리는 좋게 헤어졌다. 아무에게나 말을 잘 걸고 친화력이 엄청나게 강한 인도 청년들이었다.


  오디오를 들으면서 레드포트를 보는데 거대하고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건물의 외관을 한번 만져보기도 하고 뚫어져라 보면서 섬세한 조각미를 느꼈다. 몇 백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도 보존되어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하나씩 찍으면서 걷고 있는데 30 여분 동안 햇빛을 맞으며 걸으니 정신이 몽롱했다. 자세히 듣던 오디오 설명도 2번 듣고는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이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사막 한가운데를 돌아다니는 것과 같았다. 난 모든 걸 제쳐두고 물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슈퍼마켓에 도착해 물을 사고 급한 마음에 물을 입에다 부었다. 머리는 땀으로 옷은 물로 흥건히 젖었다.


  눈에 초점을 잃은 상태로 슈퍼마켓 앞에 쭈그려 앉았다. 입장료와 오디오 비까지 합해서 700루피(14,000원)인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냥 숙소에만 있을걸 괜히 나왔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 와중에 한 남자가 내 앞에 서더니 인사를 했다. 인사할 힘도 없어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대충  “하이”라고 말했다. 인사하고 가던 길 가겠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이제는 내 옆에 앉아서 계속 물어봤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아난드였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아난드는 쉬고 있는 나에게 대뜸 벨 뿌히(Bhel Puri)를 먹자며 식당으로 끌고 갔다. 사실 난 레드포트에 오기 전에 배불리 점심을 먹었는데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는 매점 옆 음식점으로 들어가 입구 쪽에 앉았다. 그리고 아난다는 벨 뿌히 (Bhel Puri)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은 금방 나왔고 한 숟갈 먹으니 우리나라 누룽지에 야채와 토마토를 올린 듯한 맛이 났다. 아난드는 나에게 궁금한 게 많은지 오물오물 씹으면서 계속 물어보는데 입속에 있는 음식들이 내 밥그릇에 다 튀었다. 배 불러서 억지로 먹고 있는데 플러스로 아난다의 입안에 있는 음식까지 먹어야 했다. 


  꾸역꾸역 음식을 다 먹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인도 사람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내가 믿을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었다. 난 페이스북 아이디를 가르쳐주고 악수를 하고 떠나려고 하자 아난다는 나를 잡았다. 혹시나 또 사기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쳐다보니 자기가 팔에 끼고 있던 액세서리를 주고 싶다고 했다. 난 괜찮다며 사양을 했는데 아난다는 말했다.


“이건 끼고 여행하면 신이 널 지켜줄 거야, 우리는 외국인들도 신으로 모셔 그리고 난 인도에 사니까 또 살 수 있어”


  몇 천 원에 살 수 있는 물건이지만 나에게 준다는 것에 그 마음이 고마웠다. 난 받기만 하면 미안해서 줄 게 있나 가방을 뒤졌는데 모나미 펜이 나왔다. 검은 펜과 빨간펜이 있었는데 스페셜 한 빨간펜을 주면서 인도에서는 구할 수 없다면서 과대포장하면서 줬다. 여행을 하면서 사소한 것이 여행자들에게는 평생 간질 할 수 있는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레드포트에서 호스텔로 가는 길에 조금은 헤맸지만 잘 도착했다. 숙소로 돌아와 아난드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끼고 있는 팔찌 사진을 보냈다. 아난드는 인도 여행을 잘하라며 응원을 해줬다.


From Toronto

Instagram: Jooho92


60 루피를 주고 찍은 증명사진. 참고로 현상수배 아닙니다.
나에게 인도에 깊은 인상을 준 소중한 인연 (아난다)
알라딘 바지 (똥싼바지) 창고로 엉덩이가 무릎밑까지 내려와서 편하긴 한데, 인도사람들의 사랑의 눈빛을 많이 받습니다.
인도 지하철 티켓?, 동전처럼 되어있어서 찍고 들어가고 나올때 동전을 넣으면 됩니다.
더위 먹어서 죽을뻔한 레드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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