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아일랜드로 향하게 된 까닭은?

by 민보

한창 수능 준비로 바빴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와 집에 가는 버스에서 수능이 끝난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수능을 마친 뒤 대학생이 되면 워킹홀리데이에 가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내일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는 워킹홀리데이가 외국에 나가 일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먼 타국의 삶을 꿈꾸는 듯 말했다. 그 당시 나는 거주지역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 있었기에 대학원서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만 썼을 정도로 타 지역에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수능이 끝나고 20살이 되었다. 눈이 펑펑 오는 날, 나는 가보고 싶던 내일로 여행을 떠났다. 처음 타 보는 기차, 혼자라는 두려움이 마음속에 작게 자리 잡고 있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설렘이 있었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친절했고, 따뜻했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느꼈던 예상치 못 한 환대와 따스함 때문인지 나는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뒤로 줄 곧 방학만 되면 여행을 다녔다. 부산, 경주, 전주 그러다 지역을 더 넓혀서 태국, 인도, 대 만까지. 점점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성격이 조금은 느긋하고, 경쟁을 싫어하는 유형이다. 그러면서도 틀에 박힌 삶에 대한 회의감 도 있었는데 남들 하는 졸업, 취업, 연애, 결혼 등 대학을 졸업하면 그 뒤로 있을 수많은 퀘스트 같은 것들을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워킹홀리데이가 떠올랐다.


곧바로 행동에 옮겨 워킹홀리데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캐나다, 영국, 호주, 대만… 수많은 나라들 이 있었지만 나는 남들이 예상하는 틀 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중국어나 독일어는 익숙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영어권 국가 위주로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나라는 피하고 싶었다. 호주, 그리고 물가 비싼 영국, 캐나다를 제외하면 갈 수 있는 나라가 아일랜드밖에 없었다. 아일랜드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은 EBS 다큐에서 본 게 다였다. 1년에 뽑는 인원이 600명 제한이 있었지만, ‘못 가면 취업하지 뭐!‘ 라는 다소 낙천적인(?) 마음으로 지원서를 넣었다. 운이 좋았던 탓인지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 졌고, 그 뒤로 차근차근 서류를 준비하여 어렵지 않게 아일랜드에 1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영어를 잘 못했던 탓에 나는 어학원에 다닐 생각으로 돈을 착실히 모아서 갔다. 한국에서 미리 어학 원 3개월을 등록한 뒤 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 당시 한창 메르스가 창궐하고 있어 중간 경유지였던 아부다비에서 마스크를 쓰고 물도 못 마시고 앉아 있던 게 생각이 난다. 그렇게 몇 시간을 더 날아 더블린 공항을 거쳐 호스텔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이제야 낯선 이국 땅에 도착한 것이 실감되었다. 손 뻗으면 닿을 듯한 구름과 새 파랗던 하늘. 오후 10시나 되어서야 해가 지던 하 늘, LOOK LEFT라고 커다랗게 쓰인 횡단보도 등 크고 작은 낯선 것들에 둘러 쌓인 것을 보니 외국에 온 것이 실감되었다.


그동안 내가 다녔던 여행에는 끝이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이 있었고, 마지막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건 여행이 아니었다. 살기 위한 집을 찾아야 했고, 돈이 떨어지기 전에 일을 구해야 했다.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어드벤처게임 속 주인공 같았다. 어학원에 다니는 동안은 그래도 행복했다. 수업이 끝나면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놀기 바빴다. 서로 서툰 영어로 소통하며, 햄버거를 먹거나 근교 나들이를 가곤 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진 않았다. 초반에 의욕적인 모습과 달리 친구들도 생 활에 익숙해졌는지 하나, 둘 결석하기 시작했고 북적북적거리던 교실도 친구 몇 명 밖에 보이지 않았 다. 어학원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줄어가는 통장잔고를 보며 한숨이 늘어갈 즈음에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니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러갔다. 레스토랑 주방에서의 삶이 생각보다 고단했지만 그래도 낯선 이국 땅에서 당당히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에는 리프레쉬를 위해 독일과 벨기에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짧은 여행이 주는 달콤함 속에 다시 일상을 버틸 힘을 찾았다. 여행을 가기 어려운 경우에는 내가 이곳에 잠시 여행 온 것처럼 생각했었다. 출퇴근길의 익숙한 거리를 낯선 곳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고, 방앗간처럼 들리던 카페는 처음 와보는 카페인양 굴었다. 그러면서 타국에서의 낯설고도 익숙한 삶에 차츰 적응해가고 있었다.


더블린 생활이 익숙해지며 이곳에서의 행복을 하나, 둘 늘려가던 때였다. 비자를 연장하리라 다짐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다. 일하던 레스토랑이 갑작스레 문을 닫은 것이었다. 직장을 다시 구하려니 막막해졌다. 이력서를 돌리고, 직장을 구하는 일이 커다란 돌덩이처럼 비자 연장하려는 마음을 짓눌렀다. 애초에 내 목표는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해보았으니 나의 목 표는 달성한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나는 결국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하니 그 뒤에 일은 생각보다 순탄했다. 집을 내놓았고, 세금 환급을 신청하고, 돌아갈 비행기를 구했다. 친구들과의 눈물의 이별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한국으로 바로 돌아가긴 싫어 돌아 돌아가는 여정으로 선택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의 삶은 예상대로 단조로웠다. 오 랜만에 사람들을 만났고,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내가 겪었던 수많은 우여곡절의 경험들이 나의 입에서 는 고작 몇 마디 말로 정리되어 버렸다. 목표였던 것을 달성했지만, 생각보다 기쁘지 않았다. 나는 목표 만을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목표를 달성한 뒤의 삶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는 망망대해 속 방향을 잃어버린 배처럼 갈 곳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방황 속을 지나 나중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목표 달성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배 우고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을. 더블린 생활을 통해 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신감과 독립심을 키울 수 있었다. 또한, 낯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내 안에 잠재된 능력과 열정을 일깨워 주었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비록 아일랜드에서의 워킹홀리데이는 끝났지만, 생각만 바꾼다면 한국에서의 삶도 워킹홀리데이와 이와 같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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