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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찌에 담긴 의미

인도 푸쉬카르에서 얻은 깨달음

by 민보


유난히도 더웠던 21살의 여름,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여 방학이 끝날 때까지 200만원 가까이 돈을 모았다. 당시 대학생 기준으로 보면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해외여행을 꿈꾸던 나에게는 그리 넉넉한 돈은 아니었다. 한번 떠나는 여행 이왕이면 오랜 기간 지내다 오고 싶 어, 거리는 멀지만 물가는 비교적 저렴한 나라를 찾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나라는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길쭉한 삼각형을 가진 나라 인도였다. 평소 해야 할 일들을 차일피일 미루기 좋아하는 나지만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하고 나니 어느새 비행기 티켓까지 금세 결제해 버렸다.


겨울 방학을 앞에 코 앞에 두고 서로의 방학 계획을 묻는 말에 나는 인도로 여행을 가겠다고 답했다. 동기들의 대부분은 왜 하필 인도로 가냐며, 사건·사고가 많은데 굳이 어려운 여행을 택하는 나를 이해하 지 못했다. 인도로 여행지를 선택하며 보았던 다큐와 영화에서 본 이국적이고 낯선 풍경들에 대한 기대 감과 호기심이 무수히 커져 버린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가고 싶은 이유를 이야기하여도 이해받지 못할 것을 예상하였기에 애써 말로 표현하려 하지 않았었다.


출국 당일, 강릉에서 4시간을 내리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혹시 늦을까 봐 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해 버린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진짜 떠나는 것이 맞는지 볼을 살짝 꼬집어 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고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로 향했다. 비행기 안에서 마주한 것은 뒷면에 ‘Incredible India’가 크게 적힌 입국 카드였다. 입국 카드를 작성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무사히 뉴 델리 공항에 내려 공항버스를 타고, 델리 시내로 가서 마주한 인도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화면을 통해서만 보던 복잡한 풍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매캐한 먼지 덩굴 속 인도와 도로 구분 없이 사람과 오토 릭샤, 소가 한데 뒤섞여 정신없는 소음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었다.


복잡한 중심을 지나 숙소를 구해 무거웠던 짐을 풀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인도에 왔다니!’ 뉴델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인도에 오는 꿈을 꾼 탓인지 이곳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두려움도 잠시, 감사하게도 방학 시즌에 맞춰 뉴델리에 온 배낭여행객들과 동행이 되어 여행의 일 부분을 함께 하기로 했다.


사기꾼이 만연한 도시에 만나 같은 말이 통한 다는 것만으로 유대감이 자연스레 생겼다. 우리는 라자 스탄이라 불리는 인도의 중서부를 함께 여행 다녔다. 뉴델리를 거쳐 사막 도시인 자이살메르에서 낙타를 타며 보름달을 보기도 하고, 영화 김종욱 찾기 촬영지로 유명한 조드푸르에서 메헤랑가르성을 보기도 하고, 인도 사람들의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우다이푸르에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기차가 5시간 이상 연착되거나 갑자기 물이 안 나오거나 식사를 하다 정전이 되는 등 작고 다 양한 고난이 있었지만, 함께 있었기에 그 마저도 작은 추억 거리로 기억될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을 한 지 2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같이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도 잠시, 우리는 서로 가야 할 곳이 달랐기에 우다이푸르에서 헛헛한 이별을 맞이해야만 했다. 아름다웠던 우다이푸 르를 뒤로 하고 내가 가고 싶은 도시는 푸쉬카르라는 도시였다. 그곳은 힌두교의 3대 신으로 꼽히는 브 라흐마의 사원이 있는 곳으로 힌두교 성지중 하나다. 브라흐마는 힌두교에서 세상을 창조한 신으로, 힌두교의 성지인 만큼 술과 고기가 엄격하게 금지된 도시였다. 나는 이곳에 있는 호수에서 바라보는 일 몰이 아름답다는 말에 주저 않고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푸쉬카르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우다이푸르에서 푸쉬카르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었기에 나는 덜컹 거리는 로컬버스를 타고 아즈메르라는 곳에 내렸다.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아즈메르 에 도착했다. 택시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사방이 뻥 뚫린 오토 릭샤라는 이동 수단이 흔한 인도에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배낭여행자들이 으레 하는 말 중에 배낭의 무게가 전생의 업보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전생에 15kg의 업보를 가진 여행자가 되어 오토 릭샤에 올라탔다. 밤에 오롯이 혼자 오토 릭샤를 타려니 덜컥 겁이 났지만 무사히 별 탈 없이 숙소에 도착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작은 방안의 자물쇠를 잠그며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마주한 한낮의 푸쉬카르는 어제의 어둡고 무섭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푸쉬카르에 일주일 정도 머물 예정이었기에 길을 익히려 골목길을 이리저리 쏘다녔다. 푸시 카르는 큰 호수를 가운데 두고 계단 형태로 된 ‘가트’가 둘러싸고 있다. 종교의 성지인 만큼 가트에 앉아 긴 수염과 머리를 가진 명상하는 사두 (수행 활동을 하는 고행자들의 총칭)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가트을 따라 있는 선셋포인트가 아름답다고 들었기에 그곳을 찾아 발걸음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선셋포인트가 보일 무렵 어느 사두가 나에게 다가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물어본 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이 지역이 서태지가 왔었던 곳이라며 나에게 푸쉬카르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었다. ‘가수 서태지?’ 내가 서태지 세대는 아니지만, 왠지 그럴싸해 보이는 사두의 말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잠시 나눈 뒤 그는 나에게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부할 생각이 없느냐고 갑작스레 물어보았다. 예상치 못한 기부 요청에 나는 당황했지만, 지금은 학생이라 돈이 별로 없다며 주머니 속에 잔돈을 모아 건네주었다. 평화를 위한 기부금을 받은 사두는 고맙다며 나에게 주황색과 노란색이 뒤섞인 실팔찌를 채워주었다. 사두를 만나고, 기부하기까지의 상황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 당황했지만, 그래도 팔찌도 생기고 기부도 했으니 좋은 마음을 갖고 숙소로 돌아왔다.


번잡하지 않고,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그곳에 며칠 더 머무르게 되었다. 낯선 골목길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내가 사두를 만나 기부를 했던 일이 이곳에 만연한 사기 수법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날 잔돈이 많지 않아 건네준 돈이 많지 않았지만,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분이 언짢아진 채로 다시금 가트로 향했다. ‘미리 알았으면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지난 일을 후회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푸쉬카르에 머무는 동안 나의 작은 즐거움은 해가 질 무렵 선셋 포인트에 앉아 그림자가 길어질 때까 지 일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날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선셋 포인트로 발걸음을 향하는데, 긴 머리와 턱수염을 가진 사두가 내 쪽으로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다가왔다. ‘나에게 또 사기를 치러 왔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질문이 끝나자마자 소매를 걷어 내 손목에 걸려 있는 팔찌를 쓱-보여주었다. 사두가 팔찌를 확인하자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의 대화가 필요 없었다. ‘너 이미 사기당한 사람이구나!’라는 표정으로 사두가 씨익 웃더니 다른 기부자를 찾아 유유히 자리를 떴다.


사기를 당했다고 언짢아하며 미숙했던 행동을 후회했던 것도 잠시, 팔찌가 이곳에서는 일종의 증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 이후 푸쉬카르는 나에게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감 가는 도시로 변하였다.


비록 사기를 당했지만 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곳은 여행자들의 로망이 가득한 천 국이 될 수도 있고 사기가 만연하여 무섭고 두려운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머나먼 인도에서 느끼고 돌아왔다. 도시의 먼지로 가득해 숨 턱턱 막히던 뉴델리도, 연 날리는 줄이 바닥에 엉켜 넘어질 뻔했던 갠지스강의 바라나시도, 한국 절을 찾아 새벽녘 기차를 타던 순간들도 평생 그리워해야 할 풍경으로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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