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업무차 관공서에서 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그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복직 후 인사차 방문한 자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소개받았다.
내 명함을 받아 든 그 사람의 눈이 조금 커진 것을 눈치챘다. 그는 자리에 앉은 후에도 계속 나를 빤히 쳐다봤다. 새로운 담당자를 눈에 익히기 위한 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인가, 생각하며 그냥 넘어갔다.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그가 말했다.
“저 차장님 만난 적 있어요.”
아, 그랬구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아주 잠깐 일한 적이 있었나 보다. 우리 회사와 긴밀하게 일하는 관공서이니 일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어느 프로젝트에서 그를 만났던 걸까 과거의 시간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익숙한 프로젝트 몇몇이 머리속을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매우 낯설고 뜻밖이었다.
“소개팅.”
네? 뭐라고요? 그 단어는 나의 인생에서 퍽 오래전에 사라진 단어였으며 한때 나에게 기쁨과 슬픔을 주었으나 사실 삶에 결정적인 순간을 가져다주지는 못했고, 100번까지만 세어본 이후로 무수한 소개팅을 했음에도 결국은 소개팅이 아닌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된 나에게, ‘소개팅’이라고요?
그렇다. 우리는 업무로 만난 사이도 아니었고, 기관 간의 행사 중에 스친 사이도 아니었으며, 무려 강남역에서 소개팅을 했던 사이로 판명 났다. 그리고 10년 후, 애엄마와 애아빠가 되어 회사 업무거리를 사이에 두고 우연히 만난 것이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소개팅을 너무 많이 했다.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 내 업무 특성상 언젠가는 이 바닥에서 과거의 소개팅남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두 번 정도는 했던 것 같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회사로 복귀하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운전을 하면서 참으로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는 옛날 남자친구도 아니며, 썸남도 아닌, 딱 한 번의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었으므로 떠오른 추억 하나 없는데 도대체 이 기분은 뭘까.
그리움이었다.
그것은 10년 전 그의 앞에 앉아있었을 나 스스로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10년 전의 나는 그 강남역에서 어떤 메뉴를 골랐을까, 뭘 좋아했을까, 그 취향이 지금과는 달랐을까, 나는 그날 어떤 대화를 했을까, 무슨 꿈을 품고 무엇을 말했을까, 어떤 표정이었을까, 지금보다 더 맑고 가벼운 표정이었을까, 그날들은 맑았을까, 흐렸을까. 나는 인생에 대해 잔뜩 기대에 차 있었을까. 어땠을까.
그때 난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