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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May 26. 2024

우리의 40대를 앞두고

서로의 얼굴을 닮아 갈 내 친구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미안합니다. 답장이 너무나 늦었지요. 미나리님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편지가 2월 초, 맙소사, 그러니까 겨울이었습니다. 지금은 바로 눈앞의 페이지를 넘기면 틀림없이 여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5월 말인데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봄이 막 끝나기 전에 우리가 한강에서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봄이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잔뜩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수 있었지요. 과거로부터 시작된 봄의 사건을 현재의 내가 해결한 후, 이제야말로 제 손으로 새로운 챕터를 열어보려는 순간, 과거로부터 이어진 또 다른 사건이 터져서 여전히 이리저리 얽힌 타래를 조금씩 풀고 있습니다. 이 타래에 손발이 다 묶여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을 온종일 느끼면서요.


저는 이 세상이 합리성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합리성을 찾는 순간 스스로가 괴로워진다는 사실을 진작에 깨닫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 같기도 하고요.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합리적인 모양이라는 것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부조리한 모양으로 읽힐 수 있고, 여러 상황에서 이용당하는 장면도 많이 봤습니다. 절대적인 합리성이 없는 커다란 혼란 속에서 의연하게 서 있기 위해서는 제 스스로의 심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의 심지를 어떤 화분에서 가꿀지 어떤 모양으로 뻗어나가게 할지에 따라서 저의 얼굴이 달라지겠지요.


봄부터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제가 없었던 시간대의 일이라 다소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사건들의 해결사 역할은 저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자주 무대 위에 서 있었지만 종종 객석을 오가는 입장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화분에 있는지, 어떤 모양의 심지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심지가 어떻게 늙어갈지도 보이더라고요. 중년의 얼굴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조직으로부터 월급 받는 생활을 20년 가까이 한 미나리님도 잘 아시다시피 직장인의 심지라는 것은 사실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화분에 담긴 토양이 그럭저럭 비슷하기 때문이겠지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면피'하는 것이야말로 직장인의 심지에 담긴 공통된 핵심 성격이 아닐까요. 면피, 이번 봄에 지겹도록 목격한 얼굴들입니다. 정말이지 저는 그 얼굴로 늙고 싶지 않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수많은 직장인 중에 하나인 제가 이렇게 참으로 철없는 소리를 합니다.


생명을 다한 것은 3월 28일의 새벽이었다. 언제가 마지막일지는 알지 못했을지언정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사카모토 씨는 마지막 남은 목숨의 에너지를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그렇지 않은 일들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낸 것 아닐까. 아니, 오히려 그것이 생명의 유지를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 류이치 사카모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5월에는 내내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사건이 마무리되어갈 즈음에는 사카모토 선생님의 글을 뒤로 하고 '저자를 대신한 에필로그'를 읽으며 제3자가 기록한 사카모토 선생님의 마지막 장면들을 읽었지요. 나의 마지막 장면들, 그때의 내 얼굴에 대해서 계속 떠올린 이유는 아마 이 책의 영향이 클 겁니다.


예술가의 삶과 직장인의 삶은 그 자체로도 시간의 결이 너무나 다르지 않냐는 반문이 있겠지요.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의 에너지를 어떤 일에 쏟아 낼지에 대해서만 놓고 본다면 그냥 한 개인의 삶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의 이 책이 단순히 예술가의 인생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나의 에너지를 어떤 일에 쏟을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지금부터의 내 얼굴에, 내 심지에 중요한 화분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마친 우리의 40대가 지나가면 아마도 쉬이 바뀌지 않는 얼굴을 갖게 되겠지요.


어릴 적 올라가서 놀던 나무보다 키가 더 커지면 이런 느낌일까. 그러나 이제는 내 삶이 지금 보이는 지평선 너머까지 뻗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로 관록은 갖추게 되었다. 삶은 휘청거리고 삐걱거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테고, 그 방향을 나 스스로 잡는 편이 낫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시 말해 내 삶은 여러 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그 말은 현재의 챕터를 언제라도 끝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또 한 번의 중요한 챕터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번 챕터에서도 우리는 늘 함께 할 친구일테고, 서로의 얼굴을 닮아가겠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추신.

그런데 미나리님, 그거 아세요? 우리 지난 봄에 한강에서 만났던 날, 육아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더라고요. 그야말로 우리는 새로운 챕터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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