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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Jun 21. 2024

능소화 피는 계절에 띄우는 편지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해마다 능소화가 필 무렵이 되면 담벼락에 걸린 주홍의 꽃을 보며 슬님과 함께한 우리의 싱싱했던 20대를 떠올립니다. 그 시절 능소화를 배경으로 찍어둔 사진이 있었던 것도 같고, 이 꽃의 이름을 슬님이 제게 처음 알려주어서 인듯도 하고… 그 이유는 이제 가물가물하지만 능소화가 피는 계절에는 늘 슬님과 내가 매일같이 만나 걷고 이야기하고 웃던 젊은 날들을 추억한다는 사실만은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최근에 sns에서 능소화의 어원에 대해 쓴 글을 보았습니다. 능소화(凌霄花)의 한자는 업신여길 능(凌), 하늘 소(霄)를 쓴다고 합니다. 장마와 태풍의 계절을 비웃듯이 화려하게 피는 꽃이라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보니 능소화의 꽃색인 주홍이 어쩐지 강하고 당당한 느낌인 것 같네요. 슬님이 편지에서 말했듯 “혼란 속에서 굳은 심지로 의연하게 서있는 모습”을 닮은 듯도 합니다. 


저는 최근 도쿄 여행을 다녀왔어요. 도쿄는 정말 오랜만이었지요. 북적이는 도시, 분주하게 일상을 사는 사람들 속에서 여행자로 지내는 기분이 썩 즐거웠습니다.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지요. 하지만 도쿄라는 도시는 뭔가 더 사야할 것 같고, 뭔가 많이 먹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곳이라(일본여행이 다 그런건가 싶지만) 하루 이틀 지나며 조금 피곤해 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워낙 즐거워해서 그걸 보는 것이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편지를 시작하며 ‘능소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리타 공항에서 내려 도쿄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안에서 길에 핀 능소화를 보고 슬님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얼른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요. 제가 이번 여행에서 읽으려고 가져간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입니다. 요즘 달리기에 푹 빠져있기도 하고 일본 여행에서 읽기에 일본 작가의 책이 좋겠다 생각했거든요. 아주 오랜만에 하루키의 책을 읽으니 ‘아 맞다. 이런 느낌이었지’ 새삼스럽게 느끼며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달리기는, 특히 장거리 달리기는 '명상'이라는 말을 합니다. 오래 달리다보면 많은 생각이 자연스레 머릿속을 드나들고 그런 과정에서 또 가벼워지기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달리며 하는 생각들은 늘 흩어지기 마련이고 그것이 달리기의 장점이지만 오가는 생각들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서 달리기 후에 짧게라도 기록을 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늘 다짐만 하고 정작 쓰는것에는 실패합니다. 네, 저는 하루키가 아니니까요.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체로 오랜 시간을 달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깊이 생각에 잠기곤 한다. 글쎄, 도대체 나는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제까지 달리며서 무엇을 생각해왔는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중략)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공백 속에서도 그 순간순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진공을 포용할 만큼 강하지 않고, 또 한결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도 달리고 있는 나의 정신 속에 스며들어 오는 그와 같은 생각(상념)은 어디까지나. 공백의 종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용이 아닌, 공백성을 축으로 해서 성립된 생각인 것이다.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이 남는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넓고 아득한 그릇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P 37,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여행중에 도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러닝 코스인 황궁 주변을 짧게 달렸습니다. 잘 정돈된 공원의 러닝코스를 혼자 달리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 없이 혼자라서 였을까요! 초여름인데다 조금 늦게 러닝을 시작했더니 아침 해가 완전히 떠오른 뒤 달리게 되어 길지 않은 코스였지만 달리고 났더니 온몸이 비에 맞은 듯 젖었더군요. 저는 축축한 몸으로 숨을 몰아쉬는 그 순간이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우선 '오늘의 달리기'가 끝났으니 더이상 달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었다는 점에서 몸과 마음이 편하고, 무엇보다 온몸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 상태의 나 자신이 조금은 대견한 기분이 들거든요. 여행지에서 낯선 길을 달린 뿌듯함은 평소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여행지에 가더라도 그곳 러너들과 짧게라도 같이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내일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그것은 내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100킬로의 레이스를 완주했다. 신체의 소모는 물론 극심했고, 레이스가 끝난 후 한동안은 이제 당분간 달리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래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질리지도 않고, 언젠가 또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는 날이 돌아올는지도 모른다. 내일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그것은 내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P 162,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기록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별로 유쾌한 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나 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충실하게, 훨씬 정직하게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을 때부터(도대체 그게 언제였을까?)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전진해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요절을 면한 사람에게는 그 특전으로서 확실하게 늙어간다고 하는 고마운 권리가 주어진다. 육체의 감퇴라고 하는 영예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 P 186,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는 거의 매일 10km를 뛴다고 합니다. 저는 일상러닝으로 4~6km 정도를 매일 달리려고 노력하는데요. 언젠가 하루키처럼 하루에 10km쯤 거뜬히 달릴 수 있게 되고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1분도 달리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5km정도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으니 언젠가 하프, 풀마라톤도 출전하고 하루키처럼 10km 데일리 러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조바심 내지 않고 꾸준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아서 내 기록이 발전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달리기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마주치는 다른 일들도 조바심 내지 않고 여유롭게 대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쉽지가 않네요. 저는 요즘 '평온한 사람'이 가장 멋진 사람 같아요. 분위기에 쉬이 휩쓸리지 않고 자신과 일상을 가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달리기를 얼마나 더 하면 하루키처럼 어떤 일에도 무심한 듯 덤덤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요? 슬님이 들으면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요. "선배, 그건 불가능이에요. 우린 원래 그렇지 못한 인간이에요"

만약 심신의 단련에 필요한 고통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일부러 트라이애슬론이나 풀 마라톤이라고 하는,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스포츠에 도전할 것이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잘 된다고 하는 가정이지만) 다다를 수도 있다.
 
- P 256,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오늘 아침에도 한강을 뛰었는데요.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제 앞을 달리는 어떤 여성의 속도에 맞춰 뛰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메이커'라고 들어보았지요? 달리다보면 길위에서 그날의 동료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처럼 누군가의 등을 보며 속도에 맞춰 뛰기도, 누군가를 앞서 뛰게 되기도 하죠. 물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저를 앞서가기도 하고요. 달리기에선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심지어 그런 사람 없이 혼자 끝없는 길을 달려야 한다면 너무 괴롭겠구나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어요. 하루키 책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면서 오늘은 길위의 러너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끝으로, 이제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길 위에서 스쳐 지나며 레이스 중에 추월하거나 추월당해 왔던 모든 마라톤 주자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만약 그 주자 여러분이 없었다면, 나도 아마 이렇게 계속 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 P 267,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인생도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다 각자의 속도로 뛰고 있는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 이리저리 복잡한 마음을 다잡아 보겠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인생을 많이 배웁니다. 


슬님, 제 인생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어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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