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님의 복직을 응원하며
미나리님,
올여름은 무대에서 물러나길 힘겨워하는 배우 같습니다. 하지만 몇 번의 커튼콜 후에 끝내는 물러날 뜨거운 주인공이겠지요. 비워진 무대는 아름다운 가을로 채워질 것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미나리님이 복직을 하는군요. 날짜는 이미 진작부터, 아니 처음부터 정해진 것일 테지만 막상 손에 잡힐 거리 안에 성큼 다가온 출근날짜를 받아 들고 미나리님은 얼마나 심란해하고 있을까요. 미나리님이 말한 것처럼 ‘원하는 순간에 스스로를 원하는 장소로 가져다 놓는 사치‘와 ’ 마음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와는 아마 잠시 멀어지겠지요. 하지만 저는 미나리님과 저의 휴직을 거치면서 그런 사치와 자유를 누린 후에도 여전히 돌아갈 수 있는 나의 자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선택이 어려운 때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
- 정혜윤, <삶의 발명>
저의 사무실 자리에 붙여둔 문장이에요. 그리고 고민스러운 선택 앞에서 한번 읽어봅니다.
“어떤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
저는 ‘성실하게 내 삶을 사는 엄마’가 주인공인 한 여자의 이야기 속에 살다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랑하는 저의 아이들이 저를 떠올릴 때 그런 모습의 주인공으로 기억된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무리 아이들과 관계없는 사안이어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당당한 선택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복직한 저에게 큰 동력이 되는 배경이고요. 선택의 순간에 다시 한번 더 링 위에 서 보기로 한 미나리님의 용기도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교훈이 될 것입니다.
이본 쉬나드와 더그 톰킨스와 릭 리지웨이는 모험을 떠나 텐트 안에서 잠을 잤을 것이다. 그들의 텐트 안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 "이 땅과 저 땅이 연결되면 진짜 아름답겠지?", "이 땅과 저 땅 이 연결되면 저 큰 나무 밑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피크닉을 즐기겠지?" 솔직히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삶을 돈에 통째로 팔고 싶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 큰 나무 그늘 아래 쉬는 것 같은 마음의 평화를 주는 이야기가 필요한 한 인간으로서, 지구를 자원뿐만이 아니라 경이롭고 성스러운 선물로도 경험한 사람들로서 이런 이야기가 그립다.
- 정혜윤, <삶의 발명>
워킹맘.
복직하고 1년이 좀 넘은 시점에서 돌아보자면 저는 정말 ‘일하는 엄마’라는 타이틀에 충실하게 회사 업무와 육아에만 집중하여 살았던 것 같아요. 휴직기간에 연결되었던 새 인연들과는 소원해졌고, 제 일상을 가꾸던 취미들과도 꽤 멀어졌습니다. 삶의 모양이 달라졌지요. 나는 어느 쪽 삶을 선호하는지, 어떤 것이 내 모양인지 고민스러운 시간들도 많았지만, 이 모든 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어요.
힘의 논리와 경쟁으로 터질 것 같은 회사 생활을 견디려면 무구한 이야기가 필요했는데 특히 아이들과 나누는 시간이 큰 힘이 되었어요. ‘멜론 머스크’ 덕분에
우리는 화성에 갈 수 있을거라는 아들의 말에 깔깔 웃는 그런 시간도 포함되지요. 엄마 역할을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에는 오히려 제가 위로 받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 같네요. 성큼 큰 아이들이 이미 잠든 밤, 그마저도 힘든 날에는 정혜윤 작가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일상을 밝히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책이 있고, 외로운 순간에도 곁에는 책이 차고 넘치니 다행이에요.
고군분투하며 울고 웃는 우리의 이야기도 누군가의 일상을 밝혀줄 수 있겠지요. 이쯤에서 이제 복직을 앞둔 미나리님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와 비슷하면서도 또 참 많이 다른 미나리님의 이야기가 얼마나 저에게 큰 공감과 에너지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이제는 정말 가을을 앞둔 날에 미나리님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슬